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한국 태교 문화의 지속가능한 가치

태교란 무엇인가?

태교란 임신한 여성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기 위해 몸과 마음가짐을 조심하는 태아 교육을 뜻한다. 태교의 원리는 한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뱃속에서부터 품성의 근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아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태교는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한 모든 노력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태교의 범주를 확장하면 임신 중 태아를 보호하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각종 조치라 할 수 있다. 서양 사회에서도 임신 중 임신부와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금기사항이 있었다. 태교는 여기에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가 합쳐져 장기간 일궈낸 한국의 눈부신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태교가 활짝 꽃핀 시대는 조선 왕조(1492~1897)였다. 조선인들에게 태교란 그저 단순한 태아 교육이 아니었다. 태아 교육에 앞서 부부가 먼저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마음과 몸가짐을 착하게 가져야 한다고 여겼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을 임신 전부터 적용하여, 태교의 첫 출발을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에서 찾았다.

그래서 부모가 될 사람은 자식을 갖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했다. 남모르게 착한 일을 하고, 순수한 본성을 되찾으려고 노력한 다음에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자식을 기다렸다. 이러한 측면에서 태교란 태아 교육을 넘어서 부모와 자녀 모두 착한 인간성을 갖기 위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여러 문헌에 나타난 태교 전통

동아시아에서 오랜 전통을 갖는 태교의 기원은 3,000년 전 중국의 주(周)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태교에 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시기는 9세기 말로, 신라 왕조의 유명한 승려들의 일대기를 새겨놓은 비석(碑石)에 그들의 어머니가 태교를 실천한 내용이 들어있다. 예컨대, 원랑선사의 어머니는 “선사를 잉태한 날부터 예절을 지키고 행동을 조심했으며 불경을 외우는 것으로 태교를 했다. 태어날 때 보니 과연 평범하지 않았다”라고 나온다.

고려 왕조에서도 고려사에 태교 관련 기록들이 나오며, 고려 왕조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의 어머니가 임신한 여성을 위해 쓴 태중훈문(胎中訓文)의 일부 내용이 전해오고 있다. 또 신라 왕조처럼 승려들의 일대기를 새겨놓은 비석에도 그 어머니들이 태교를 실천한 내용이 남아 있다.

이후 조선 왕조가 시작되면서 태교가 왕실에서부터 민간에까지 보급됨에 따라 관련 서적이 많아졌다. 대표적으로 조선 왕조 제9대 임금인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1437~1504)는 내훈(內訓)이라는 책을 쓰면서 여기에 태교를 실천하는 방법을 적어놓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의서에도 태교에 관한 내용이 풍부하게 실렸다. 대표적으로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시대인 1433년에 출간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한국 의서 중 최초로 태교가 독립 항목으로 실렸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이 쌓여 1800년 이사주당(1739~1821)이라는 여성이 태교신기(胎敎新記)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조선 왕조에서 꾸준히 읽힌 유교 경전 및 의서에서 임신ㆍ태교에 관한 내용을 발췌하고, 이사주당이 자녀들을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얻은 경험을 종합해 새로운 태교 지식 체계를 구축한 것이었다. 태교 전문서로서는 동아시아에서 최초였다. 따라서 이 책은 태교의 역사에서 볼 때에 기념비적인 학술서라 평가할 수 있다.

태교의 방법

태교는 태아를 품은 어머니의 마음과 몸의 상태가 태아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원리에 기초한다. 조선 왕조에서 강조한 태교법은 ‘조심’이었다.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정성스럽게 빚듯 태교는 건강한 아이를 소망하면서 조심하는 데에 역점을 두었다.

내훈을 비롯하여 여러 책에서는 임신부가 본인과 태아의 건강을 위해 여러 가지를 조심하도록 권장했다. 임신부의 행동이나 음식, 약물 섭취, 마음가짐이 전부 태교의 범주에 속했다. 나쁜 음식을 먹지 않고, 음란한 음악을 듣지 않으며, 좋지 않은 그림이나 형상을 보지 않고, 해로운 장소에 가지 않도록 했다. 또 많이 자거나 오래 누워 있지 말고 자주 걷게 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태교신기에서는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태교를 강조했다. 남편은 욕망을 억제하고, 남편을 포함하여 가족 모두가 임신한 여성을 돕게 했다.

한편, 태교는 왕실에서도 소중하게 여겼다. 19세기경에 왕실 여성이 출산에 임박했을 때나 출산 직후 알아야 할 기초 지식을 담은 《임산예지법(臨産豫知法)》이 오늘날까지 소중히 남아있다. 이 책에 따르면 임신부가 해산할 달이 다가오면 방 안팎을 평온한 분위기로 만들게 했다. 시끄러운 소리나 급히 걷는 소리가 나지 않게 하고, 문과 창문을 닫아서 조용히 출산을 기다리게 했다. 방 안의 공기를 잘 통하게 해서 덥지 않게 했다.

임신부는 옷을 알맞게 입어 몸이 너무 따뜻하거나 춥지 않게 했다. 임신부의 주변에는 나이가 많고 지식이 풍부하며 성품이 조심스러운 여성 서너 명을 두어 좌우에서 모시게 했다. 또 복통이 심하더라도 반드시 움직이게 했다. 해산하는 달에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섭취하고, 출산이 임박해 진통이 심해지더라도 마음을 편히 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처럼 《임산예지법》에 나오는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여 출산을 앞둔 왕실의 여성들이 수시로 펴보면서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방 안 공기를 덥게 하지 말고 수시로 몸을 움직이면서 체력을 보양할 수 있는 밥과 미역국 섭취를 강조한 점이 인상적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임산부들에게 권유하는 내용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형유산으로서의 미래적 가치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에 여성들은 주로 집안에서 활동했으며 오늘날처럼 일상적으로 바깥일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바깥세상과 거리를 둔 채 개인적으로 또는 가족의 보호 속에서 태교가 가능했다.

하지만 긴밀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사는 현대인들은 다르다. 여성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더구나 많은 임신부가 직장에서 각종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임신한 여성이 개인적으로 바른 음식을 먹고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것만 보고 들으려 해도 사회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태교를 포기할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태교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태교에 참여해야한다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태교가 임신부와 그 가족에게만 한정된다는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고귀한 생명이 안전하게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사회 구성원 전체가 노력하는 것이 태교여야 한다. 이럴 때에 태교가 낡은 전통이 아니라 미래적 가치가 있는 무형유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임신부와 태아의 건강과 안전을 위하여 태교가 개인의 실천에서 공동체의 가치로 전화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