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피지 이타우케이언어문화연구소 : 이타우케이족의 우주론

이타우케이(iTaukei)족으로 알려진 피지 토착민들에게 무형문화유산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기원전 3500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태평양에 걸쳐 전달된 풍부한 구전 전통에 의해 피지의 이타우케이족은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의 인근 섬 부족과 많은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은 구전 전통과 사회 관습, 자연에 대한 지식, 전통 공예와 공연 예술 등의 많은 종목을 통해 표현된다. 이 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은 조상 영혼의 현현으로 간주되는 족장 중심 사회구조 간의 활발한 상호교류를 통해 존속되고 있다. 다양한 무형문화유산 종목들의 실천은 이타우케이족이 유지해 온 전통적 삶의 현 상황을 정당화, 강화시킨다.

피지의 이타우케이언어문화연구소는 2004년 문화지도 작성 사업에 착수하였으며, 현재까지 14개 주 중 6개 주의 문화지도가 작성되었다. 문화지도 작성 중 현장자료 수집자들은 소멸 직전의 상태에 처한 전통지식의 일부와 접했으며, 해당 주에서 5인 이하의 실연자만 이 전통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료 수집자에 의해 발굴된 인간문화재는 연구소에 보고되었다.

연구소 내에 신설된 특별복원과는 특정 지역 내에서의 복원 워크숍에 의한 이타우케이족 전통지식의 복원을 통해 보유자와의 교류는 물론 전통지식의 사회 관습으로서의 점진적 승격 및 수익 창출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훈련이 본토인 비티레부(Viti levu)의 타일레부(Tailevu) 주 켈레쿠로(Qelekuro) 마을에서 실시된 바 있다. 문화지도 계획 과정에서 자료 수집자들은 마을 이름이 ‘토기용 찰흙’을 의미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러나 마을의 도예 전통을 기억하는 유일한 주민은 연로한 할머니였다. 게다가 마을의 네 씨족 중 도기 제조에 관한 전통지식을 지닌 가문은 ‘흙’을 의미하는 ‘나켈레(naqele)’로 불리고 있었다. 식민지시대 이전에 토기는 이웃 씨족과의 물물교환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씨족은 족장에 대한 충성과 존경의 표시로써 토기를 바쳤다. 식민지 시대와 이후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이 전통은 점차 잊히고 사라지게 되었다.

2008년 이러한 어려움을 파악한 연구소의 문화지도팀은 2009년 2월 1차적인 회생 작업에 착수하였다. 최초로 시도된 바누아(vanua, 가정, 마을) 접근법은 이타우케이족의 전통 기풍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었다. 토기 공예는 여성들이 전담하고, 남성 연장자들과 족장들은 그 보호자 역할을 담당한다. 복원 워크숍은 부족 남성과 여성에 대한 두 세션으로 나뉘어 동시에 실시되었다. 여성들에게는 도예 기술의 실기 전수가 행해졌으며, 남성들에게는 공예 기술의 보호자로서의 전통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유도되었다. 동시에 관습과 규범, 나아가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각 하위 씨족의 역할에 관한 전통적 역할과 책임이 다시 논의되고 강화되었다.

토기는 이 지역 고유의 경목재인 다쿠아 마카드레(dakua makadre, 학명 Agathis macrophylla)나무의 송진을 발라 심미적 가치를 부여한다. 켈레쿠로 마을에서 이 나무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이 나무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거나 도공들이 전통적 방식의 물물교환을 통해 송진을 입수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복구 워크숍은 거의 사멸된 무형문화유산을 회생시켰을 뿐만 아니라 환경 보존 활동을 통합하였다. 산림부와의 협력을 통해 다쿠아마카드레 나무의 송진이 확보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산림부는 해안선의 급속한 침식을 막기 위해 켈레쿠로 해안을 따라 맹그로브(mangrove) 나무의 재식재 사업에 착수하였다. 또한 후대의 켈레쿠로 마을 도공들을 위한 송진을 확보하기 위해 다쿠아 나무를 식재하였다.

3개월 후에 있었던 사후 방문에서 여성 전통지식 보유자 수가 50명으로 늘어났음이 확인되었다. 그들은 새로 만든 토기를 건조시키기 위해 별도의 초가집을 새로 지었으며 이 지역에서 개관 예정인 휴양지에 기대를 걸고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 다쿠아 묘목 식재와는 별도로(처음 심은 묘목 중 두 그루만이 살아남았다) 켈레쿠로 마을의 사례는 전통지식과 무형문화유산이 전통기술을 복구시키고 전통적 가족, 친족, 공동체를 존속하게끔 하는 가능성을 고무시키는 증거이다. 켈레쿠로 마을은 오늘날의 현대화, 세계화 조류 안에서 이타우케이족의 우주론이 한때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목소리와 명예를 회복하는 데 무형문화유산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