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피지 원주민의 장례식에서 나타나는 애도 방식의 변화

삶에 있어서 확실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성별, 연령 그리고 사회경제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심지어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에게도 닥칠 수 있다. 피지 어로 ‘아프다’는 ‘타우비 마테(tauvi mate)’인데,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죽음과 계약을 맺다’라는 뜻이다. 장례식에 해당하는 피지 어는 ‘소마테(somate)’로 ‘소’는 ‘모임’이라는 뜻이고 ‘마테’는 ‘죽음’ 또는 ‘죽다’라는 의미이다. 장례식을 찾은 사람들은 비통함에 빠져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을 고하는 유족에게 감정적, 정신적, 물리적 심지어는 경제적 도움을 주기도 한다.

비통함은 장례에서 매우 중요한 감정이며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슬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장례의식은 세상이 무너질 듯한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고인의 죽음 후에도 세상은 변함이 없다는 안도감을 준다. 남은 자들의 삶은 이어져야 하므로 애도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개인으로서 슬픔을 표하든 집단으로서 슬픔을 표하든 ‘공식적인 애도기간’에는 끝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피지에서 중요한 장례의식은 매장한 날로부터 네 번째, 열 번째, 백 번째의 밤 그리고 1년 후이다. 현재 우리는 날짜를 따지기 위해 달력을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매일 밤 매듭을 묶거나 벽에 갈대를 붙여서 날짜를 셌다(Deane, 1921, p. 15).

애도를 표하는 것은 전 세계가 공통인 반면 표현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과거 피지에서는 스스로에게 벌을 줌으로써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남은 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다(Frazer, 1913, p. 452). 이를 통해 위로를 받은 망자의 영혼은 이승을 평화롭게 떠나 평온하게 잠들게 된다고 여겼다.

슬픔을 표하는 방법으로서 자기를 벌하는 것은 희생 혹은 금기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다. 이것은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중요한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개념이다. 피지의 장례식에서는 큰 소리로 우는 것을 소라고둥을 불거나 갈라진 나무 틈을 계속 치는 것으로 대체한다. 이는 땅과 사람들이 우는 것을 상징한다(Fison, 1881, p. 146).

그러나 슬픔의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와 기능에 있어서 계속 변해왔다. 예를 들어 1800년대 이전에는 추장이 죽으면 희생제물로 추장의 친구나 심복, 부하, 아내, 때로는 어머니까지 목을 졸라 순장했다. 그 다음 그들의 시신을 토토(coco, thotho)라고 하는 깔개를 무덤 바닥에 놓고 그 위에 추장의 시신을 안치했다(Fison, 1881, p. 137). 이후 기독교 문화가 유입되면서 목을 졸라 순장하는 대신 검지를 잘라 추장의 시신과 함께 매장하는 것으로 변형되었으며 점차 이러한 관습은 모두 폐지되었다(Crocombe, 1973).

다른 희생제물은 음식과 관련이 있다. 바누아(Vanua) 레부(Levu) 섬에서는 추장을 매장하고 나서 마을 사람들이 열흘 혹은 이십 일 동안 금식을 한다(Adam, 1890, p. 68). 오늘날에는 금식 대신에 매장하고 난 직후 큰 연회를 연다.

한편 비티(Viti) 레부(Levu) 섬 나드로가(Nadroga) 주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로 장례가 이루어진다. 이곳 사람들은 100일 동안 밤마다 죽은 사람이 먹었던 마지막 음식이나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러한 음식에 대한 금기를 루바 베누(luva benu)라고 하며, 이 관습을 지금도 행하고 있다.

오늘날 피지의 일부 공동체에서는 사람을 매장한 후 100일에서 1년까지 작은 산호초 지역이나 강에 가지 않는데, 그 목적은 금기 지역에서 수확되는 어획량을 늘리기 위함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물고기를 잡아 죽은 사람 추모식에서 사용하는데 이는 추모기간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처음 이러한 전통이 시작된 1800년대에 장례에서 물을 금기한 이유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추장의 몸은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금기로 여겨졌다. 그가 죽으면 보우타(bouta)라고 하는 사람을 뽑는데 이들만이 유일하게 추장의 시신을 만질 수 있었다(Fison, 1881, p. 139).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들을 깨끗하지 않은 존재로 간주했다. 때문에 보우타는 스스로 마을 외곽에 고립해 살면서 자신이 목욕을 한 강이나 산호초 지역에 표식으로 막대기를 놓아두었다. 과거 금기지역은 불결한 곳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 곳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추모식 연회 음식을 만드는 데에 쓸 물고기 어획량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바뀌었다.

위에서 소개한 몇 가지 사례를 통해 피지의 장례문화는 애도기간 중 유족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며 희생이나 금기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문화권이나 의식과 마찬가지로 장례문화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형태나 기능면에서 계속 변화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변화해 갈 것이다. 변화의 주요 요인은 기독교, 자본 그리고 서구화 같은 이유를 들 수 있다. 앞으로의 도전 과제는 피지의 문화유산이 외부요인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고 토착민들 스스로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는 진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Adams, E. H. (1890). Jottings from the Pacific: Life and Incidents in the Fijian & Samoan Islands. Oakland, Cal.: Oakland, Cal., Pacific Press Pub. Co.

Crocombe, R. G. (1973). The New South Pacific. Wellington, N.Z.: Wellington, N.Z. Reed Education.

Deane, W. (1921). Fijian Society or the Sociology and Psychology of the Fijians. London: London, Macmillan and Co.

Fison, L. (1881). “Notes on Fijian Burial Customs.”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10, 137-149. doi: 10.2307/2841604

Frazer, J. G. (1913). The Belief in Immortality and the Worship of the Dead (Vol. 1). London: Macmillan and Co Limite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