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전통장인과 디자이너 사이의 윤리 문제

전 세계 정부와 NGO들은 전통공예 공동체의 활성화와 시장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디자인과 전통공예를 접목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해 현재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 디자인 사업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프로젝트는 디자이너들에게만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갔고, 전통 공예가들은 여전히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전통 공예가와 디자이너 간의 공동작업에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수많은 사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디자인이나 브랜드 복제와 같은 위반행위를 통제할 권리와 그와 관련한 여러 문제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전통공예 공동체를 대할 때는 같은 수준의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실로 수많은 전통공예품이나 직물이 복제되는 데 대해서 엄격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농촌지역에 위치한 인도의 수공업 시설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들의 절대 다수가 사회적 약자로 매우 취약한 계층이다. 이와 같은 전통 공예가들은 세대 간 구전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오랜 기간에 걸친 훈련과 도제과정을 거쳐 연마한 전통 기예와 기능의 보유자이자 연행자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디자이너와 제조업자들은 일반 상품을 디자인하거나 생산할 때와는 달리 공예품을 대할 때는 그것에 내재한 가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징적 의미가 부여된 이들 공예 장르는 분명한 브랜드 정체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 과 ‘브랜드’라는 측면에서 공예 장르는 대중적인 담론으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공예가들이 직면한 또 다른 문제는 바로 공예 클러스터라는 명목으로 인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시내 번화가 상점에서 복제된 공예품이나 가짜 수공품들이 손쉽게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자스탄(Rajasthan)과 구 자라트(Gujarat)의 전통 홀치기 염색 직물인 반디니(Bandhini)의 대량 공장 인쇄, 마하라 쉬트라(Maharashtra)의 콜라푸리(Kolahpuri) 샌달의 플라스틱 복제품, 핸드 블록으로 찍어내는 대신 값싼 스크린 인쇄로 만들어지는 직물과 공장 직조기에서 복제되는 바나라스 (Banaras)의 유명한 수직 양단 등은 일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만연해 있는 복제와 ‘차용’은 전통 공예가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이들이 전통 지식으로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탈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평등과 불공정의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1982년 전통문화표현물에 대한 지적 재산 형태 보호를 위한 수이 제너리스(sui generis)모델이 개발된 이래,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창조물에 대한 도덕적 권리와 지적 재산,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잠재적,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마련은 국제사회의 주요 논제가 되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확실한 법적 보호책이 마련되지 않은 채 논의만 계속되고 있다.

파나마와 뉴질랜드와 같은 일부 국가들은 자국의 사정과 필요에 맞추어 정책을 마련해왔다. 인도의 경우 지리적 표시법 (Geographical Indication Act) 제정을 통해 공동체 지식에 대한 법적 보호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법은 지적재산권 관련 거래법의 하나로 고유의 품질, 명성 혹은 기타 특성들이 기본적으로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고 있을 경우, 지역 특산품임을 인증하는 제도이다. 이 법은 그 동안 지역문화전통에서 파생되거나 그와 관련이 있는 상품을 보호하는 실질 적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고, 그 결과 2013년 2월 현재 178개 품목이 등록되었으며 그중 113개가 전통 수공예품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새로운 개념의 제도 이다. 등록된 지리적 표시법은 아직 인도의 다양한 전통 수공예품을 모두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이 등록제도가 수공업분야의 경제적, 문화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 전통장인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익이 될 것인지 아직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등록제 실시 이후 지리적 표기인증과 수공업 분야의 복지가 실질적으로 연결된 추가적인 조치도 아직 실시되고 있지 않다.

이렇듯 적절한 제도적, 법적 보호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예복원트러스트는 디자이너와 전통공예장인들 간의 상호관계를 조정할 새로운 윤리강령을 지지해왔다. 지난 2005년에는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디자이너, 장인들을 만나다』(리투 세티 편집)라는 책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전 세계의 디자이너들과 전통장인들 간의 모범 협력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의 개정판을 준비 중에 있다. 개정판에는 오늘날 세계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전통수공예 공동체의 도덕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지침과 이에 대한 인식제고 강화의 필요성을 담을 예정이다. 이번 출간이 전통공예장인과 디자이너 간의 관계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