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유교식 근간, 한국 실정에 맞게 긍정적으로 수용

한국에서 혼례는 인륜지대사라 할 정도로 중시된다. 혼인이 배우자와 가족을 이루고 가문을 형성하는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국 혼례 문화의 특징은 첫째 유교식 의례의 한국화다. 한국에서는 중국식 의례를 국내 사정에 맞게 수정해 우리 것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고구려 때부터 전승돼 온 전통에 따라 신부 집에서 혼례를 올린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유교식 의례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과 절차를 합리화하는 것이다. 혼기에 찬 자녀가 있는 집안에서는 중매쟁이를 통해 배우자를 물색하고 의논하는 의혼(議婚)이 시작된다. 의혼이 성사되면 남자 집에서 청혼의 뜻으로 납채(納采)를 한다. 여자 집에서 이를 승낙하면 남자 집에서는 혼인서약서인 혼서지를 넣은 함을 보내는 납폐(納幣)를 한다. 예식 날이 되면 신랑은 신부 집으로 처음 가는 초행을 한 뒤 본 예식에 앞서 전안례(奠雁禮)를 올린다. 이때 믿음, 질서, 지혜, 의리를 상징하는 기러기를 바침으로써 백년해로를 맹세한다. 이어 신랑과 신부가 서로 인사하는 교배례(交拜禮)를 하고, 술을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巹禮)를 한다. 합근이란 둘로 나뉜 표주박을 다시 하나로 합침으로써 천생연분의 인연이 다시 합쳐졌음을 강조하는 의미다. 예식을 마치면 큰상을 받고, 첫날밤을 치르고 나서 사흘 정도 머물다가 신랑 집으로 가는 신행을 한다. 신부는 새 삶터인 시댁으로 들어갔으므로 시댁 식구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폐백(幣帛)을 올린다. 이로부터 1년쯤 지나면 근친(覲親)을 한다. 근친은 부부가 된 신랑신부가 잘살고 있음을 신부 친정에 보이는 절차다. 이로써 혼례의 긴 여정이 마무리된다.

세 번째 특징은 혼인을 문서로 증빙한다는 것이다. 청혼서와 허혼서(납채서와 답서), 혼례날을 잡는 날받이(연길), 혼인을 서약하는 혼서지(예장지) 등 혼례의 전 과정에서 주고받는 편지가 곧 증명서가 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자가 죽으면 그 관에 혼서지를 넣는 풍습이 생겨났다.

네 번째 특징은 음양의 화합이다. 신랑과 신부는 각각 양과 음으로 구분된다. 음양의 상징은 예단을 묶거나 혼례식장에 장식하는 청실과 홍실, 청색과 홍색의 촛대, 안은 청색 바깥은 홍색의 활옷, 예식을 마치고 신부가 시집살이를 시작할 때 입는 녹의홍상 등 곳곳에서 나타난다. 혼례를 뜻하는 글자에 ‘장가갈 혼(婚)’ 자가 아닌 ‘날 저물 혼(昏)’ 자를 사용한 것도 양인 신랑이 음의 시간인 저물녘에 음인 신부를 맞이한다는 의미다.

다섯 번째 특징은 양가의 결합이다. 혼례의 모든 절차는 혼인 당사자가 아니라 양가 집안의 결정에 따른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혼주로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마지막으로 전통 혼례는 마을 축제라는 것이다. 흔히 “아무개 집에 ‘혼인잔치’ 있단다”라고 표현하는 혼례는 말 그대로 마을 공동체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잔치였다.

한국 의례의 문화적 전통이 유교식이듯 혼례 문화도 유교식이다. 물론 중국식이 아닌 한국의 상황에 맞게 발전시킨 한국의 유교식이다. 요즘 혼례식장에 반드시 폐백실을 갖춘 것도 한국 실정에 맞게 긍정적으로 수용한 것 중 하나다. 한국의 의례 문화는 유교식에 그 뿌리를 두되 다양한 문화 요소를 수용해왔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무형유산이다. 중국에서 공자 사당의 제사 지내는 법을 배우려고 한국을 찾는 것도 유교식 의례 문화가 잘 남아 있어서다.

의례는 중요한 무형유산이다. 유교식 의례의 전통을 잘 지킨 종묘제례, 석전 등의 국가의례는 원형이 잘 전승되고 있다. 또한 삼년상의 상례를 비롯해 제사, 혼례, 관례(성년식) 등도 유명 종가를 중심으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개인의 일생 의례는 물론 국가의례까지도 무형유산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 관심을 가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