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와양 클리틱-전승의 어려움과 생존을 향한 의지

클리틱(klithik)은 와양(wayang, 그림자 인형극)의 한 종류로, 클리틱이라는 이름은 인형사인 달랑(dalang)이 인형을 놀릴 때 나는 ‘클리틱, 클리틱’하는 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형의 몸체는 얇은 나무를 깎아 제작되며, 팔은 가죽으로 만든다. 와양 클리틱 공연은 막을 사용하지 않는 까닭에 관객들이 직접 인형사를 볼 수 있다.

인형극 공연에는 켄당(kendang, 북), 사론(saron), 케툭(ketuk), 케농(kenong), 케체르(kecer), 레밥(rebab), 켐풀(kempul) 등 슬렌드로(slendro) 음계를 지닌 악기로 구성된 가믈란(gamelan) 악단의 반주가 수반된다. 공연단은 인형사를 포함하여 8명으로 구성된다.

기록에 따르면 와양 클리틱은 마타람(Mataram) 왕국의 왕 아망쿠라트(Amangkurat) 1세의 통치기인 1648년 수라바야(Surabaya)의 왕자였던 판게란 페킥(Pangeran Pekik)이 창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734년 카르타 수라(Kartasura)에 있었던 파쿠 부아나(Paku Buana) 2세 통치기에 와서 와양 클리틱은 판게란 페킥의 발상을 모방하여 재창조되었다.

〈라마야나(Ramayana)〉와 〈마하바라타(Mahabharata)〉에서 가져온 이야기들을 상연하는 와양 푸르와(wayang purwa)와는 달리 와양 클리틱은 〈다모르울란(Damarwulan)〉, 혹은 〈다마르 사상카(Damar Sasangka)〉의 이야기들을 상연한다.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다마르울란은 마자파힛(Majapahit)왕국의 관리였던 파티흐 우다라(Patih Udara)의 아들 카르타 아르다나(Kartha Wardhana)라고도 불리었다. 블람방간(Blambangan)의 왕 프라부 메낙징가(Prabu Menakjingga)를 처단한 그는 마자파힛의 왕으로 즉위하여 프라부 브라위자야(Prabu Brawijaya)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때 그는 켄카나 웅우(Kencana Wungu) 여왕과 결혼했다. 이 설화는 어둠과 빛, 진리와 악 사이의 갈등의 영원한 상징물인 달(다모르 울란, Damarwulan)과 해(미나크 징가, Minakjingga)의 싸움을 상징하며, 선이 항상 승리한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공연 주최자의 요청에 따라 〈다모르울란〉 외에〈판지(Panji)〉와 〈메낙(Menak)〉의 이야기가 포함되기도 한다.

과거에 마을의 정화의식과 같은 제의적 행사나 특정한 연례행사의 일부로 자주 상연되었던 와양 클리틱은 오늘날 거의 상연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연행자의 수도 급감하고 있다. 자바 동부 케디리(Kediri)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은 와양 클리틱 달랑이었던 하르지토(Harjito)는 다른 그림자 인형극 와양 쿨릿 푸르와(wayang kulit purwa)의 달랑으로 전직하였다. 그러나 자바 동부 느간죽(Nganjuk) 지역의 주민들은 마을을 정화하기 위한 루와탄(ruwatan) 제의 때에 정기적으로 와양 클리틱을 상연하고 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와양 클리틱을 연행할 수 있는 달랑은 7명만 남아있다. 그러나 낮은 수입으로 인해 점차 그들 중 다수가 안정된 수입을 보장하는 와양 푸르와 달랑으로 전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와양 클리틱의 활성화를 위해 예술가 자신은 물론 공동체, 정부를 포함한 모든 관계자의 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