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옹기, 숨 쉬는 그릇

“독 안에 든 쥐”,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이다. 크기가 큰 옹기인 ‘독’ 안에 쥐가 빠지게 되면 도망갈 수 없으므로 곤경에 빠진 사람의 처지를 흔히 이 속담으로 비유한다. 또한 음식을 끓이거나 담는 뚝배기는 모양이 그리 좋진 않으나 그 안에 담긴 ‘장맛’이 좋다는 뜻으로, 겉모양보다 내용이 훨씬 훌륭함을 강조한 말이다.

옹기와 관련된 속담을 많이 쓰는 것은 그만큼 우리 한국인의 생활이 옹기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우리 살림의 반은 옹기”라고 할 정도로 다양하게 옹기가 쓰이고 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우리의 전통 식품을 발효할 때 옹기는 가장 효과 높은 용기다. 진흙을 섭씨 1,200도로 구워서 만드는 옹기는 자기와 달리 안팎의 공기가 서로 통하면서 발효가 잘된다. 이를 우리는 이른바 ‘숨 쉬는 옹기’라고 한다. 또한 옹기에 담은 물은 잘 변하지 않으며, 옹기에 보관한 쌀에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이 밖에도 촛대, 재떨이, 담배보관함, 요강, 약탕기, 벼루, 식기, 제기(祭器), 땅에 묻는 토관, 연통 등 옹기로 만든 종류가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렵다.

옹기는 전문 기술을 쌓은 장인(匠人)이 만드는데 그 기술이 매우 독특하다. 외국에서도 우리의 옹기(Onggi)를 김치(Kimchi)나 불고기(Bulgogi)처럼 한글 발음을 영어로 표기할 정도로 우리의 독특한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

옹기를 만들기 위한 재료는 진흙, 약토(소나무가 많은 구릉에 나뭇잎, 풀뿌리 등이 오래 동안 쌓여서 썩은 흙), 하얀 흙, 땔나무, 잿물 등이다. 이전에는 옹기를 만드는 곳 주변의 언덕, 논, 밭 등지에서 진흙을 채취하였다. 그러나 차츰 좋은 흙이 없어지게 되고, 1950년대 이후부터는 멀리서 흙을 파 와 큰 구덩이에 넣고 물을 섞어 고운 진흙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진흙을 전문으로 만드는 공장에서 구입하여 쓴다.

옹기를 만드는 곳인 옹기점은 작업장, 건조장, 수비장(진흙을 개는 곳), 잿물 보관소, 가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에는 보통 장인 2명과 보조자 2, 3명이 있었으나 지금은 장인 혼자 일하는 곳이 많다. 드물게는 현대식 공장 규모를 갖춘 곳도 있다.

옹기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물레의 판 위에 흰 흙가루를 뿌리고 그 위에 진흙으로 바닥에 펴서 판을 만든다. 물레 판에 흰 흙가루를 뿌리는 것은 옹기의 모양 완성 후 물레에서 뗄 때 옹기가 눌어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옹기의 바닥을 만들고 나서 그 위에 진흙가래(또는 진흙판)를 말아 올려서 쌓아가며 모양을 완성시킨다.

크기가 큰 옹기는 두 명이 천을 이용하여 그늘로 옮겨서 말린다. 옹기가 마르면 옹기에 유약을 묻히고 다시 건조시킨 후 가마 안에 넣고 불을 땐다. 보통 사흘 정도 장작불을 때며, 장인과 보조자가 교대로 밤을 새워 가며 일한다. 굽는 것이 끝나면 이틀 정도 가마를 식히고 나서 옹기를 꺼낸다. 숙련된 장인이라도 이 과정에서 옹기 10개 가운데 3, 4개밖에 완성품을 얻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옹기장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다. 특히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지역이 이러하다. 이는 18세기 이후 정부의 가톨릭 탄압을 피하기 위해 신자 가운데 옹기장으로 변신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 신자 옹기장들은 가마에 쓸 나무를 손쉽게 구하기 위하여 깊숙한 산 속으로 들어가 지냈으며, 옹기를 각 지역에 팔면서 포교 활동을 하거나 신자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정부에서는 지난 2006년 100대 민족문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로 옹기를 선정하고, 현재 전통 기술을 보유한 옹기장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지금은 플라스틱 제품의 사용으로 옹기를 많이 쓰이지 않지만 옹기는 우리 한국인에게 여전히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