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자나카랄리야 이동 민속극의 한 장면 © 스리랑카 자나카랄리야 문화재단

연극과 민속예술을 통한 사회통합의 성공사례 ‘자나카랄리야 프로그램’

한 국가의 물질적 발전은 문화발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문화발전은 지식과 기술의 진보에 기여하며, 이질적인 전통과 신앙을 존중하고,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바람직한 시민을 양성하는 발판이기 때문이다. 문화발전이 없는 물질과 기술발전은 비인간적이며 방향을 잃은 채 혼란에 빠진 인간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적절한 교육, 올바른 종교와 철학, 진실한 대중매체, 건전한 예술과 문화관습은 현대사회의 타락으로부터 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다. 문화재단 자나카랄리야(Janakaraliya)의 공연예술 프로그램은 적절한 교육체계와 예술 및 문화관습을 활용해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있다.

스리랑카의 기존 교육체계는 서로 다른 공동체의 문화와 종교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동체들의 통합을 증진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간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스리랑카의 중·고등학교들은 대부분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 신할라(Sinhala)와 타밀(Tamil) 등 민족언어 사용 학교, 영어 사용 학교
  • 불교,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종교학교
  • 성별에 따른 남학교와 여학교
  • 재학생 수에 따른 인기 학교와 비인기 학교
  • 지역에 따른 도시 학교와 시골 학교
  • 재정 수입의 차이에 따른 부자 학교와 가난한 학교

스리랑카의 교육환경 속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종교와 계층에 따라 사회적 분열을 야기하는 사고방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일부 학교의 졸업생들은 분열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중 선동가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스리랑카 교육에는 화합을 익히게 하는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으며, 동일 학군이나 같은 도시에 있는 학교들에서도 학생들의 상호이해와 통합을 돕는 프로그램이 운영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운동 경기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기도 하지만, 학교 스포츠가 다른 사람을 누르고 승리하기 위한 경쟁심 고취에 이용될 뿐, 학생들 간의 화합과 긍정적인 관계형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다른 공동체의 문화와 전통을 배우거나 감상하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신할라족 학생들이 타밀어를 배우거나 타밀족 학생들이 신할라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물다. 분열을 가르치는 현 교육체계는 학생들이 서로 다른 문화예술 전통을 배우고, 관심사와 즐거움을 나누는 길을 막고 있다.

민속예술을 활용한 사회통합 교육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우리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 ‘사회통합을 위한 프로그램(Theatre for Social Cohesion)’을 제안했다. 스리랑카 교육부는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였고, 독일기술협동조합(German Technical Cooperation. GIZ)의 기금지원을 받아 우바(Uva)주의 반다라웰라(Bandarawela) 학군에서 시범운영을 했다.

먼저 동일 학군 내 신할라계 학교, 타밀계 학교, 이슬람계 학교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하루 일정으로 1차 워크숍을 열었다. 각 학교별로 10명씩 모두 50명의 학생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선발 되었다. 교사들을 위한 2박3일 일정의 워크숍도 열렸다. 교사들은 교육과 사회통합을 위해 공연활동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연수를 받았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들이 다 함께 다른 공동체의 전통 민속예술에 대한 조사를 하는 간단한 과제를 내주었다. 또한 다음 워크숍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두세 곡의 민요와 민속춤을 연습시켰다.

1차 워크숍에 참석한 교사와 학생들 모두 4박5일 간의 2차 워크숍에도 참석하였다. 학생들은 연극을 준비함으로써 서로를 알아가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연극의 이야기를 짜면서 모둠 활동에 익숙해져 갔다. 서로 다른 중·고등학교 재학생들은 세 개의 팀으로 나뉘었다. 각 팀은 까마귀 가족 안에서 태어난 뻐꾸기가 ‘뻐꾹‘하고 우는 모습을 까마귀 어미 새가 바라보는 장면까지 이야기를 만들어 연출하기로 결정하고, 이야기 구조 속에 전통 요소를 녹여내어, 각 팀의 고유한 드라마를 연출하도록 했다. 워크숍에서는 학생들이 정해진 이야기를 더욱 극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조언했다. 단 연극의 결말은 2차 워크숍에서 확정하지 않도록 했다. 워크숍이 끝나 각자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은 계속해서 팀원들과 서로 상의하며 연극의 대단원을 구상했다.

3차 워크숍은 4박5일간 진행되었다. 학생들이 구상한 다양한 연극의 결말 가운데 세 개의 결말이 최종 선정되었고, 연극 세 편이 완결되었다. 신할라, 타밀, 이슬람 학생들은 각기 자신들의 전통노래와 함께 지역 방언으로 공연했다. 첫 번째 연극에서는 뻐꾸기와 까마귀가 아기 새를 공동양육하자는 데 합의하는 결말을 선보였다. 두 번째 연극에서는 정글의 동물들이 모두 모여 뻐꾸기 아기 새를 보호하고 양육하는 대단원을 연출했다. 세 번째 엔딩에서는 정글의 동물들이 이구동성으로 뻐꾸기와 까마귀들에게 두 가족이 합심해서 양육하라고 충고했다. 세 연극은 서로 다른 세 가지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신할라와 타밀족들의 전통 민속극과 음악을 혼합하여 만들어졌다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워크숍의 최종 단계로, 학생들은 연극 세 편을 각자가 소속된 다섯 개 학교에서 모두 공연하였다. 관객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학생과 교사, 부모들이었다. 신할라, 타밀, 이슬람 학생들이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남겼다. 공연 후 이어진 토론시간에서 관객들은 교육 시스템을 통해 사회적 통합과 연대가 증진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이러한 집단 창작은 세 개 공동체의 민속전통을 혼합하였고, 관객들에게 다른 문화전통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심어주었다.

뒤이어 스리랑카 교육부의 지원 하에, 네 개의 파일럿 프로그램이 마탈레(Matale), 폴로나루와(Polonnaruwa),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 암파라(Ampara) 지역에서 시행되었다. 교육부는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기로 약속했다.

민속전통을 바탕으로 과거를 다루는 현대극

일반적으로 극작가들은 기존의 주류 연극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 전통극과 민속예술을 연구한다. 하지만 전통극과 민속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일시적일 뿐, 대중은 곧 민속 예술가들을 잊어버린다. 전통예술을 장려하고, 예술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는다. 전통예술과 예술가들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사라져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자나카랄리야는 민속예술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예술가를 육성하고, 관객의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나카랄리야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연극 《코카서스의 백묵원(The Caucasian Chalk Circle)》을 선택했다. 이 작품은 스리랑카 북부 자프나(Jaffna) 지역 출신의 극작가 쿨란데이 샨무갈링감(Kulandei Shanmgalingam) 박사가 타밀어로 번역한 바 있다.

먼저, 연극의 시나리오 등을 만들기 위해 타밀 전통 극작가를 섭외하기로 했다. 소수민족인 타밀 사람들 중에서 전통 극작가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남부에서 400km 떨어진 북부지역에 살고 있는 타밀 극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타밀인들은 신할라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스리랑카 남부지역을 떠나 친구와 가족을 찾아 순례를 하던 중 북부지역에 정착하였다. 우리는 타밀 전통 극작가가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된 장소 세 곳에서 워크숍을 열었다. 테루쿳투(Therukuttu), 캇타바라얀 쿳투(Kattavarayan Kuttu), 이사데이(Isadei) 스타일의 전통 극작가들과 빌루폿투(Villupottu)를 비롯한 실력 있는 전통민요 가수와 젊은 아마추어 가수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 참가자들 중 자프나 출신 회원 15명은 자나카랄리야 출신의 신할라와 타밀 극작가와 함께 벤캇티 밧탐(Venkatti Vattam)이라는 연극을 공연했다. 극의 배경은 전쟁과 갈등이며 궁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줄거리는 이렇다. 반란이 일어난 와중에 여왕이 유기한 아이를 한 시녀가 데려가 정성껏 키운다. 나중에 여왕은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주장하지만 재판관은 버려졌던 아이를 헌신적인 사랑으로 키운 시녀의 손을 들어준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상황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북부 타밀지역 사람들은 실제 삶의 경험을 무대 위로 가져오고자 노력했다. 따라서 이 연극은 번안이라기보다 실재하는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개월에 걸쳐 작품을 만들었고 2개월 간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참가자들과 지원 스태프들은 한 지붕 아래 살며 같이 식사하고 훈련했다. 다 함께 즐겁게 생활하고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놀라운 시간이었다. 음식준비, 무대제작 및 관리, 의상제작 등이 집단적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마침내 2016년 7월 22일에 자프나의 위라싱함홀(Weerasingham Hall)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연극은 신할라와 타밀 전통이 융합되면서 내용면에서 더욱 풍부해지고 역동적으로 변했다고 평가받았다.

전쟁에서 겪은 타밀의 경험이 역사적 고증을 거쳐 반영되었기 때문에 신할라인 관객들은 타밀 공동체의 고난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공연은 신할라, 타밀, 이슬람 관객들에게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공연 활동은 타밀과 신할라 전통을 융합하고 다양한 공동체의 관객들이 한 공간에서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냈다. 이는 신할라와 타밀의 공연자들이 수십 년 만에 최초로 무대를 공유한 유쾌한 경험이었다.

민속예술과 기억의 작업

사람들은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모두 기억하며 미래로 한발 한발 나아간다. 좋은 경험은 올바른 미래를 위해 활용되고, 나쁜 경험은 앞으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훈이 된다. 하지만 많은 사회에서 국가와 당국의 무관심이나 억압으로 나쁜 경험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 스리랑카 사회에서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스리랑카 북부와 남부지역에서는 이러한 상호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타밀과 이슬람교도들에 대한 신할라 불교도의 인종차별이 남부 스리랑카 지역에서 표출되지만, 신할라 불교도는 전쟁 기간에 북부 타밀 사회가 겪은 트라우마와 고난에 대해 알지 못한다. 대중매체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루지 않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의 편향된 보도는 결과적으로 신할라인들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부지역의 신할라인들은 전쟁과 갈등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극예술은 이러한 편견을 없애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자나카랄리야는 북부 타밀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신할라인들의 이해를 돕고, 편견을 없애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즉, 타밀인들의 전쟁과 전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극을 창작하여 신할라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남부지역에서 공연하는 것이다. 연극에는 타밀어 민요와 민속춤을 선보이지만, 극중 대사는 신할라어를 사용할 계획이다.

자유로운 연극공간을 활용한 민속극

자나카랄리야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라면 실내, 야외, 운동장, 타작마당 등을 가리지 않고 공연장소로 활용한다. 덕분에 사회계층에 무관하게 다수 관객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자나카랄리야는 가능한 한 많은 전통극 형식과 민속예술을 활용하고자 민속극단들의 문화 활동을 장려한다. 민속극단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스타일과 방법을 자나카랄리야의 연극에 도입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그 결과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예술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갖춘 연극을 향유할 수 있었다.

자나카랄리야의 이동극장은 이동 민속극을 위한 독특한 공연 공간으로 고안되었다. 이동 민속극은 무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관객과 배우 간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된다. 연극축제가 열릴 때마다 더 많은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지역 연극인들은 자신의 창작물을 이동극장에서 상연한다.

이동 민속극은 1976년에 연극 ‘섹쿠와(Sekkuwa)’로 첫 선을 보였다. 초연 이후 전통춤과 민요적 요소가 풍부한 작품들을 오늘날까지 40년 넘게 스리랑카에서 공연하고 있다. 흥행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왜곡된 정치체제와 착취당하는 가난한 농부들을 묘사하는 민속극 ‘소카리(Sokary)’와 ‘코람(Kolam)’을 들 수 있다. 섹쿠와는 인도 남부 도시 미소레(Misore)의 랑가야냐연극예술연구소(Rangayana Drama and Theatre Arts Institute)가 기획한 바후루피국제연극축제(Bahuroopi International Theatre Festival, 2017.1.13.~1.18)의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