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불청(不請)한 손님을 물리는 병굿 의식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무거운 병에 걸리면 그 병을 귀신의 장난이라 여겼다. 따라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귀(병을 가져온 귀신)를 물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래서 열리게 된 것이 병굿이다. 병굿이라고 말은 하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으니, 황해도에서는 퇴송굿 또는 하직굿이라 했고,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치병굿, 충청지역에서는 주당풀이굿이라 했다. 전염병이 돌게 되면 여는 굿을 손님마마굿이라고 했는데, 손님과 마마는 모두 과거 사람들을 무척 힘들게 했던 천연두를 이르는 말이었다. 실제로 천연두에 걸리게 되면 탈없이 병이 지나가기를 빌어 손님신을 멀리 잘 가시라고 빌어 보내는 손님배송굿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병굿은 병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굿이었다. 병을 병귀의 장난으로 간주한 우리 조상들은 병을 관장하는 여러 신령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모든 지방에서 찾을 수 있는 ‘손님신’은 천연두신을 가리키면서, 나중에는 의미가 넓어져 모든 질병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호남의 씻김굿이나 동해안의 별신굿은 병굿은 아니지만 손님을 각별하게 불러 모시는 굿거리로 ‘손님굿’을 했으니 이 역시 병굿에 포함될 수 있다.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천연두에 걸려 죽은 처녀신을 ‘호구신’이라고 했는데, 천연두에 걸려 얼굴이 얽어 죽은 처녀여서 부끄러운 마음에 굿판에 들어올 때에는 붉은 치마로 얼굴을 가린다. 그러면서 너울(치마)을 벗고 가야 복을 받는다면서 분값과 거울값을 요구하고, 사람들은 얼른 돈을 주어 병을 물리려고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울의 마을당(마을을 수호하는 여러 신령을 모신 곳)에는 따로 호구신령을 그림으로 그려 모신 후 병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병을 이겨내기를 간절하게 빌기도 했다. 서울 용문동 부군당에는 호구신령을 호구아씨라고 부르면서 여러 점의 무신도를 그려 봉안했다. 인천 강화도의 여러 섬에서는 질병을 관장하는 신령을 ‘별성신’이라 불렀는데 욕심이 많고 탐심이 많아 평소에도 눈치를 보며 잘 모셔야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곳곳에서 질병을 관장하는 신령을 여러 상징물로 모시고, 그를 잘 모셔 병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들은 병이 돌았을 때에도 병굿을 했지만, 평소에도 재수굿(산 사람들이 재수가 좋으라고 하는 굿)이나 진오기굿(죽은 이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굿)을 할 때 질병신을 호구, 별성, 손님 등으로 관념화하여 받들어 모셨다. 늘 항상 조심하면서 생활했고, 굿을 할 때마다 질병과 관련이 있는 굿거리를 연행하여 미리 병을 예방했던 것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치병굿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세종시에 있는 주당풀이굿이다. 병귀가 들어와 사람을 아프게 했다고 간주한 무당은 아픈 이를 눕혀 놓고 여러 도구로 병귀를 눌러 쫓는 시늉도 하고, 천으로 덮은 후 신령의 힘으로병귀를 몰아내려 하기도 한다. 진지하게 굿을 하는 무당이나, 믿음을 가지고 병귀가 물러갈 것을 기원하는 환자 가족 모두 병굿에 대한 효과를 믿고 있다.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이러한 병굿이 곳곳에서 열린다는 것은 운명이라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마음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커다란 힘이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병굿이 지금도 남아있다는 것은 병을 치료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겸손하게 절대적인 힘을 믿고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