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보그와 – 이푸가오족의 사령제(死靈祭)

필리핀 이푸가오(Ifugao)주 현지조사에서 필자가 가장 먼저 깨달은 사실은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곳에서 시간은 사람들의 꿈속에 불현듯 나타나 어떤 징조를 계시하는 신과 혼령들에게 속해 있다. 사람들은 그 징조에 대한 안내를 받기 위해 제관인 뭄바키(mumbaki)를 찾아간다.

이푸가오족의 모든 생활은 신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며, 그에 따라 이푸가오족 신앙을 주도하는 뭄바키는 신들을 위무하기 위한 적절한 제의(baki)를 거행한다. 뭄바키는 신의 축복이나 속죄를 바라는 신도를 위해 주문을 암송하며 신과 혼령들을 불러내어 봉헌물을 바친다.

이푸가오족 제의 중 하나는 사령제(死靈祭, 죽은 영혼을 위한 제사)인 보그와(bogwa)이다. 이푸가오족의 두 분파인 투왈리(Tuwali)족과 아양간(Ayangan)족은 각각 독자적인 형식의 보그와를 갖추고 있는데, 투왈리족의 보그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살인이나 사고에 의한 비정상적인 죽음이 발생할 경우, 뭄바키는 망자의 혼령인 린나와(linnawa) 만을 불러내고 보그와는 부속 제의로 바쳐진다. 특히 억울하게 죽은 영혼의 원한으로 어떤 질병이 발생했다고 간주될 경우 보그와의 역할이 중시된다.

보그와는 통상 망자가 죽은 지 1~2년 후에 거행된다. 죽은 가족이나 친척이 계속 꿈에 나타나거나, 점술을 통해 원인이 확인된 병을 치유하거나, 혼령에게 공물을 바치거나, 부모를 추모하거나 그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거나, 망자의 배우자가 재혼을 원할 경우 보그와가 행해진다.

그 중 부카혼(bukahon)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망자를 달래기 위해 단 한 번만 행해지는 보그와로서 이틀 반 동안 철야로 거행된다. 이 제의에서는 부카혼을 전담하는 제관인 문포호폿(munpohophod)이 망자의 혼령과 마나하웃(manahhaut, 속이는 자)을 불러내 벌을 주는 의식을 행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반적인 죽음에 대한 보그와는 3~12일 동안 계속되며 동일한 망자를 위해 여러 차례 행해지기도 한다. 제의를 위해 희생하는 동물의 수와 망자의 유골을 싸는 데 쓰이는 모포는 가족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보그와를 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해당 가족과 친척, 뭄바키, 그리고 경우에 따라 이웃들에게 엄격한 금기(paniyo)가 부과된다. 보그와는 망자가 노인일 경우만을 대상으로 하며, 순수하고 원한이 적어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고 여겨지는 어린이의 혼령은 그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보그와는 망자의 유골을 무덤이나 집에서 꺼내 준비하는 제차인 푼후쿠탄(punhukutan)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푼후쿠탄에서는 유골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1~2인의 문후쿳(munhukut)이 수의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씻긴 뒤 다시 배열하여 새 천으로 싼다. 망자가 남성일 경우 울로(uloh, 수제 담요)에 유골을 싼 뒤 와노(wano, 음부가리개 끈)로 묶으며, 여성일 경우 톨게(tolge, 치마 덮개)로 싼 뒤 발코(balko, 허리띠)로 묶는다. 이어 덮개로 싼 유골을 상 위에 놓아 모든 사람에게 공개한다. 날이 저물기 전 친척 중 연장자나 망자의 친구가 기도(baki)를 음송하며 망자가 살아있었을 때 행한 선한 행동들을 이야기하는 만가(lyo)가 이어진다.

보그와 기간 중 하루를 택해 뭄바키는 제물을 바쳐 망자와 그의 부모, 혹은 형제의 린나와를 초대하며, 영계의 전령 역할을 하는 뭉콘탓(mungkontad)을 통해 혼령들에게 자신들이 이승에 소환되었음을 알린다. 보그와 제의의 마지막 날에는 유골을 묘나 집으로 돌려보낸 뒤 카히우(kahiw)라는 마지막 의식을 행한다. 이는 제의 기간 중 망자의 가족과 친척에게 부과되었던 음식 금기를 해제하는 제차이다. 보그와 제의는 한 가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볼와(bolwa)라는 고기 분배 관습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을 전체가 참여한다. 보그와에 도움을 제공한 모든 주민들에게 제물로 바친 동물의 고기를 나누어주는 이 독특한 관습은 상호성과 함께 친지와 이웃 간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자신의 운명과 안녕을 전적으로 신들에게 맡기는 이푸가오족에게 보그와는 공통의 신앙을 바탕으로 한 제의의 한 예이다. 이 제의는 근대화와 변화 속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시키는 장구한 전통에 대한 이푸가오족의 믿음을 재확인하게 한다. 이푸가오족 신앙체계의 한 소우주로서의 보그와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을 반영하면서 계속적인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은 이를 기리고 기억하며, 개인 및 공동체의 유대를 유지하고, 대대로 전승되어 온 의식들을 존속시키는 기능이 변함없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보그와는 이푸가오족의 전체적인 삶에 필수적인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