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방글라데시 마니푸리 극단의 정체성 탐색

마니푸리(Manipuri) 극단은 1996년 방글라데시 모울비바자르(Moulvibazar) 구역 카말간지 우파질라(Kamalganj Upazila) 고라마라(Ghoramara)에 있는 오지 마을에서 설립되었으며 이후 탁월한 모범사례로 꼽히는 극단이 되었다. 이 극단은 마니푸리 공동체의 무형유산을 널리 알림으로써 마니푸라 문화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극단은 약 3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하여 연극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마니푸리 극단이 걸어온 여정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극단은 지난 20년 동안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마을에 기반을 둔 연극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뛰어난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그 작품들은 소외된 비슈누프리야(Bishnupriya) 마니푸리 공동체들의 통합을 이끌어내는 한편, 극단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또한 정기적인 문화교류를 통해 인도 북동부 다른 주에 살고 있는 비슈누프리야 마니푸리스와 성공리에 소통할 수 있었다.

처음 극단이 설립될 당시 구성원들은 평균 연령 19~20세 정도로 매우 젊었다. 그들은 마니푸리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한 플랫폼의 필요성을 절감했는데, 이러한 생각은 당시 마을 분위기에서 보면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이야기, 무대, 연기, 의상 등 그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독특했으며 기존의 다른 연극작품들과 매우 달랐다. 사람들은 그들을 신뢰하기 시작했으며 마니푸르 극단이 기원의 땅 마니푸르와 인도의 다른 북동부 주는 물론 주류사회에 마을 사람들을 연결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설립자인 슈바시스 신하(Subhashish Sinha)는 지나 온 긴 여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이 단체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내 나이는 20살이었다. 첫 작품은 고라마라에서 선보였는데, 그때의 경험과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시까지만 해도 ‘연극’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것이었다. 일상생활이나 투쟁을 주제로 했던 우리의 작품은 기존의 종교극들과는 매우 달랐는데, 우리의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마니푸리 종교극인 라스 릴라(Ras Leela)를 보다가 우연히 나온 것이었다.

첫 작품을 위해 우리 극단은 락스미 나라얀(Laxmi Narayan) 사원에서 여덟 쪽짜리 대본을 함께 쓰고, 촛불 앞에 둘러 앉아 완성된 대본을 읽었는데 모두들 마음에 들어 했다. 대본 속에는 자유를 위한 투쟁, 정치, 사랑 등 우리 사회 각양각색의 모습이 녹아 있었다.

이후 우리는 마니푸리 문화에 맞는 다양한 연극을 제작했다. 고라마라 마을을 배경으로 했던 첫 번째 작품의 제목은 ‘메(Megh, 구름)-브리슈티(Brishti, 비)-로데(Rode, 햇빛)’였다.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오도록 설득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우리의 성공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첫 번째는 무대 리허설이었다. 리허설 과정을 통해 우리의 작품이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때 사람들은 우리의 연극이 매우 참신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대에서 직접 보고 싶어 했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인간과 연극 간의 신비로운 관계를 꼽을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세계는 무대이고 인간은 배우인 것이다. 연극은 즐거움, 슬픔, 긴장감,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 등 인생의 다양한 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1998년 잔기르 나가르(Jahangir Nagar) 대학교 연극학과에 입학했는데, 조카 아심 쿠마르 싱하(Asim Kumar Singha)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셀림 알라우딘(Selim Alauddin)과 교육학과에 다니는 동료들은 내가 연극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특히 셀림이 쓴 ‘마드야주거 방글라 나티야(Madhyajuger Bangla Natya)’는 나에게 큰 감동을 줬는데, 특히 근대성과 전통을 융합한 형식에 감명을 받았다.

나와 동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타라레이마르 팔라(Taraleimar Pala, 타라레이마르 이야기)’는 매우 독특한 연극인데, 극본은 마니푸리어를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시인 브라젠드라 쿠마르 싱하(Brajendra Kumar Singha)가 집필했다. 공동체 문제와 실존적 위기를 타라레이마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낸 작품이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었던 작품은 ‘스리 크리슈나 키르탄(Sri Krishna Kirtan)’이었는데, 그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와 가족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 다양한 리듬과 음계가 이 작품에 사용되었는데, 65곡의 노래가 ‘마니푸리 나타팔라(Manipuri Natapala)’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마니푸리 공동체가 가진 정신을 담아내기 위해 우리는 마니푸리 극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1년 마니푸리 연극 축제에서는 세 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 축제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완벽한 마니푸리 연극 축제였다. 우리 극단은 점차 방글라데시 전역에 알려졌다. 14개 국영신문이 사진과 함께 우리를 소개하는 글을 실어주었다.

2006년 우리는 극단연합으로부터 25,000방글라데시 타카(BDT)를 지원받았다. 이 지원금을 기반으로 영국의 식민지 압박에 맞선 마니푸리 토착공동체의 투쟁을 그린 ‘바누빌(Bhanubil)’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마니푸리 사회 내 역사 문화 위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는 근대 역사에서 거의 잊혀졌던 것으로, 연극은 2008년에야 비로소 국가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았다. 이 작품은 벵갈리 어와 비슈누프리야 어, 두 언어로 제작한 우리의 첫 번째 작품이었다.

그 후 라빈드라낫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데바타르 그라스(Debatar Gras)’를 공연하였다. 다음 작품은 ‘레이마(Leima)’였다. 이 작품은 감정과 철학에 관한 내용으로, 주로 로르카(Lorca)의 ‘에예마(Eyema)’를 번역한 대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파예즈 자이르(Fayez Zahir)와 아불 칼람(Abul Kalam)과 같은 저명한 감독을 섭외하는 등 우리 극단이 이름을 얻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2012년 우리는 방글라데시를 대표하여 인도 아가르탈라(Agartala)와 실차르(Silchar)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벵갈리 어로 된 작품 ‘코헤 비랑가나(Kohe Birangana)’는 우리 극단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인도아삼과 트리푸라 지역의 여러 축제에서 ‘코헤 비랑가나’를 공연할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행히 많은 지원을 얻어낼 수 있었다. 우리 작품이 기존의 작품들과 달리 역사적,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연극에서 탈피한 덕분이었다.

우리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소외된 소수민족 언어를 되살리고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을 통해 극단이 가진 건강한 철학을 유지하려고 애써왔다. 위대한 시인 찬디다스(Chandidas), 비디야파티(Bidyapati) 그리고 고빈다다스(Govindadas) 등 풍요로운 문화적 자산을 가진 공동체를 위해 우리 극단은 동시대 문화에 마니푸리 공동체의 전통과 의식을 덧입혀 다양한 작품들을 소개하려 노력해왔다. 우리가 지향하는 여정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냇가 작은 마을에서 처음 시작한 우리는 오늘날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단체로 성장했다. 우리는 연극을 통해 소외된 공동체를 더 큰 공동체로 통합해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