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이야기할머니의 동작을 즐겁게 따라하는 아이들 ⓒ 한국국학진흥원

미래세대에게 공동체의 정서를 전승하는 할머니 이야기꾼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사업’이라는 다소 긴 이름의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9년이다. 소양을 갖춘 여성 노령층을 선발하여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게 한 후, 거주지 인근의 유아교육기관에 파견하여 한국의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만 3~5세의 유아들에게 들려주도록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사업의 목적은 크게 네 가지이다. 첫째, 여성 노령층의 사회적 활동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고령화 단계에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노령층이 자신의 삶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둘째, 미래세대의 중추인 유아들이 바른 인성을 지니고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을 단순히 한국의 전래 옛이야기뿐만 아니라 선현들의 미담으로까지 넓힌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조부모가 손주를 무릎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의 인성함양을 돕던 이른바 ‘무릎교육’의 현대적 재현인 셈이다.

셋째, 기성세대와 미래세대를 각각 대표하는 조부모와 손주 세대 간의 소통 도모이다. 대부분의 신흥산업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급격한 핵가족화로 인해 3대가 동거하는 가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조부모와 손주 세대 사이에 심각한 단절이 초래되고 있는데, 이야기할머니사업은 사회적 차원에서 단절되어가는 세대 간 만남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넷째, 장기적 관점에서 전통문화의 전승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문화적 취향을 기호(嗜好)라는 점에서 본다면, 하나의 공동체에서 미래세대가 어떤 문화에 노출되며 성장했느냐 하는 것은 그 공동체의 문화가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야기할머니사업은 한국적 정서와 가치관이 스며있는 한국의 고유한 옛이야기와 선현들의 미담을 중심으로 이야기 활동이 이루어진 다는 면에서 전통문화 전승이라는 의미 있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네 가지 사업목적을 관통하는 매개 고리는 ‘전래 이야기’이다. 할머니들은 자기 삶의 경험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아이들은 앞선 세대가 일구어온 문화와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며, 나아가 한국의 전통문화가 세대를 넘어 전승된다.

이야기할머니의 선발 자격은 만 56세에서 70세 사이의 여성으로 고정된 직업이 없어야 한다. 직업의 유무를 선발 자격에 포함한 이유는 이야기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선발 되면 1년 동안 기본소양교육(1회)과 이야기 구연 교육(월1회 총6회)을 이수하게 된다. 이를 수료하여야 비로소 이야기할머니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본격적인 활동은 2년 차부터 시작되는데, 유아교육기관의 연간 일정에 맞추어 연 30주(상/하반기 각 15주) 동안 1주일에 거주지 인근의 유아교육기관 3곳을 방문하여 이야기 활동을 펼친다. ‘지난주 이야기 돌아보기’를 시작으로 ‘이번주 이야기 들려주기’와 ‘함께 생각해보기’ 등 모든 과정은 커리큘럼의 일종인 학습지도안으로 제작되며, 할머니들의 이야기 활동은 이를 토대 로 진행된다.

이야기할머니들의 경력은 다양하다. 초중등교원이나 대학교수, 공무원이나 회사원, 평생을 전업 주부로 살아온 사람들까지 경력은 갖가지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이야기할머니로서의 열정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규미(66) 할머니는 2014년 제 6기로 선발되어 올해로 2년째 활동하고 있다. 30년이 넘게 미국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가 고국에 돌아와 의미 있는 일을 찾는 과정에서 이야기할머니사업을 만났다. 활동권역은 거주지 인근인 서울의 동작구 지역인데, 올 해는 유치원 1곳과 어린이집 1곳 등 모두 2개 유아교육 기관에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곳인 신남성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는 2학급 52명의 아이가 매주 김 할머니를 기다린다. 김 할머니의 5월 둘째 주 이야기 활동을 따라가 보자.

이번 주 이야기는 〈가난한 사람을 도운 최 부자〉라는 제목의 이야기이다. 아이들과 한 주 만에 만 나 반갑게 인사한 김 할머니는 지난주에 들려준 〈효자와 호랑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환기시키며 한 주 동안 집에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린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서로 손을 들며 심부름 한 일, 아빠 어깨를 주물러 드린 일, 엄마가 바쁘실 때 동생을 돌본 일 등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지난 시간 이야기를 통해 분위기를 추스른 김 할머니는 이번 주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옛날 최 부자라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는데 그 보답이 곱절로 돌아와 더욱 큰 선행을 베풀게 되었 다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한 주 동안 어떠어떠한 나눔을 실천하겠다며 다투어 포부를 밝히고, 김 할머 니는 또 그런 아이들을 하나하나 모두 칭찬하는 것으로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기다렸 다는 듯이 김 할머니의 품으로 달려들어 안긴다.

경남 창원에 사는 현숙자(59) 할머니는 2011년 3기로 선발되어 활동 5년 차를 맞는 베테랑이다. 올해에는 3곳의 기관을 방문하는데, 창원시청어린이 집도 그중 하나이다. 현 할머니의 5월 넷째 주 이야기는 〈개구리로 아버지를 구한 소년 홍섬〉이다. 현 할머니는 어릴 적 시골생활의 경험을 곁들여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뱀과 개구리에 대한 생태적 지식도 전달하고, 한 국 전통가치의 핵심인 효와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슬기로움에 대해 함께 이 야기를 나눈다. 이야기 활동이 끝났을 때 아이들의 생각이 그만큼 자라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상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이야기할머니사업은 재미와 교훈과 소통이 결합된 무형 유산의 새로운 전승방식의 하나이다. 특히 이 사업이 여성 노년층의 자존감 회복과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으로 주목받으면서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볼 부분이다.

올해로 출범 8년째를 맞는 이야기할머니사업의 현재(2016년 6월) 활동 인원은 전국적으로 2,500 여 명이다. 이들이 6,600여 개 유아교육기관을 방문하여 매주 43만 여명의 아이들에게 우리 옛이야기 와 미담을 들려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할머니와 유아들은 고유의 문화적 정 서가 배어있는 전래 이야기를 매개로 자신들의 전통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