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돌에 깃든 영혼의 안내자

필리핀인들은 2차원의 세계를 신봉한다. 하나는 현실세계이며 나머지 하나는 현실세계와 나란히 존재하는 영적세계이다. 산 자들이 무심코 영적세계를 방해하면 설명할 수 없는 질병이나 만성질환에 걸리거나 불운이 닥치게 된다고 여긴다. 현대의 의학으로 이 설명할 수 없는 병을 치료하지 못하면 필리핀 사람들은 전통적인 방법에 의존하는데, 이는 다양한 방법으로 영적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말한다.

타갈로그어 중에 망히힐로트(manghihilot)는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망히힐로트는 통증이 있는 부위에 코코넛오일을 발라 마사지하며 통증을 풀어준다.

코코넛오일은 알부라료(albularyo)라고 불리는 약초 의식을 집행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의약품이다. 그러나 망히힐로트와 달리 알부라료는 특정 질환이나 질병에 맞는 약초 혼합물과 함께 기도 및 주문을 외우기도 한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 두드러기로 고생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알부라료를 처음 알게 되었다. 1주일이 넘도록 저녁만 되면 다양한 크기의 반점이 생겨나 밤새 온 피부를 덮었다가 해가 뜨면 불그스름한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

한 나이 든 여인, 즉 알부라료가 마닐라 외곽의 퀘존(Quezon)에 있는 우리 집을 찾아왔다. 지금처럼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던 그 지역의 길 끝에 작은 숲이 있었는데, 숲 앞으로 흐르던 아담한 시냇물이 집 앞으로 이어졌다. 옛날 사람들은 이 시냇물을 ‘부하이 나 투비그(buhay na tubig, 살아있는 물)’라고 불렀으며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알부라료는 거실에 있는 나무로 만든 의자에 우리 가족들을 다 눕도록 했다. 촛불을 켜놓고 그녀는 몇 가지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어 불을 붙였던 성냥의 재와 코코넛 오일을 나와 다른 가족들의 배에 바르면서 십자가 모양을 그리고 집 주변을 돌며 주문과 함께 오렌지맛이 나는 소다를 뿌렸다. 그렇게 그녀가 다녀간 뒤 발진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아브라(Abra)의 마나보(Manabo)에서 현지조사를 하던 중 필자는 서산라몬(West San Ramon) 출신의 아르세뇨 펠리페 바가이 2세(Arsenio Felipe Bagay, Jr.)를 만났다. 현재 스물아홉 살인 그가

바글란(baglan, 치유자)이자 만다다왁(mandadawak, 제사 주관자)이 됐을 때는 그의 나이 열다섯 살 때였다. 그는 마치 젊은 시절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처럼 노인과 같은 풍채와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 중에 그는 바글란으로서, 그리고 만다다왁으로서 자신의 힘의 근원은 이트넥(Itneg)의 최고 신인 바가툴라얀(Bagattulayan)과 카부니얀(Kanunyian)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치료의식을 행할 때 영적 안내자가 될 피나잉(pinaing)이라고 하는 강가의 돌을 찾아 다녔다. 이트넥 사람들은 이 돌에 신(또는 여신)이 살고 있어, 치료의식을 행할 때 영적인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매개자 역할을 하는 영혼은 매번 이 피나잉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온요르(Onyor)를 지니고 나타나, 이 피나잉이 두만라위그(Dumanlawig, 질병을 물리치는 힘을 지니고 있음), 달미산(Dalmiisan, 전염병을 막아주는 바란가이를 보호하는 힘을 지님), 달리리산(Dalilisan, 여성 영혼), 부묵통(Bumugtong), 부마칵(Bumakag) 그리고 구밀라바(Gumilaba, 이들은 전쟁을 막아주는 힘을 지니고 있음), 라미산과 바알(Lamiisan/Baal, 이들은 홍수를 막는 힘을 지님), 비누와탄(Binuwatan, 또 다른 여성 영혼), 그리고 아투완(Atuwan)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준다. 이들 영혼이 깃들 때마다 온요르는 어떻게 그의 눈이 붉게 변하는지, 어떻게 그가 몸살이나 두통을 앓게 되는지, 또 작은 개미처럼 그의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올해 초, 추가적인 현지조사를 수행하면서 데니스 나르졸레스(Dennis Narzoles)라는 마린두케(Marinduque)지역에 있는 모그포그(Mogpog) 출신의 한 지역 치유사를 만난 적이 있다. 만타타왁(mantatawak)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타왁(tawak)을 만들기 위해 바랑가이 자낙동(Barangay Janagdong)에 있는 그의 집에 모여 있었다. 타왁은 그가 매년 고난주간(Holy Week)에 만드는 이 지역에 전해오는 일종의 탕약이다. 타왁은 동물, 특히 개나 뱀에게 물렸을 때 해독제로 사용한다. 이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개나 뱀에게 물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성(聖)주간 월요일이 되면 주로 망그로브숲에 가서 나뭇잎, 약초, 나무껍질이나 덩굴줄기 같은 탕약 재료들을 채집한다. 성(聖)주간 목요일에는 재료들을 손질하고, 손질한 재료들을 네 시간 정도 달이면 붉은색을 띠면서 마시기에 적합한 상태로 변한다. 성(聖)금요일의 이른 아침부터 가장 먼저 탕약을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마실 수 있는 한 양껏 마신 후에 집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한두 개의 물병에 따로 탕약을 담아 간다.

치유사들마다 그들이 선호하는 방식에 따라 치유의식이 다양하게 치러지는 만큼 필리핀에는 수많은 전통적 치유방식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