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자개로 장식된 옻칠 궤ⓒ이형만

한국의 옻칠공예

한국은 지리적 위치상 옻나무 재배의 최적지이다. 기후·지형·토질 등 옻나무 성장의 자연환경 조건이 매우 적합하여 전국 어디서나 재배가 가능하며, 생산되는 옻칠의 품질도 그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인들은 옻칠을 오랜 세월 귀하게 여기고 활용하여 한국만의 독특한 옻칠공예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켜 왔다.

한국의 옻칠이 언제, 어떻게 발생했고, 유입되어 이용되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그 기원을 밝힐 만한 문헌이나 기록도 없다. 다만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시대 옻칠의 흔적으로 보아 적어도 청동기시대 후반, 기원전 3세기경에는 옻칠을 한 기물들이 흔하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기원전 3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충남 아산 남성리의 석관묘와 황해도 서흥 천곡리의 석관묘에서 청동 그릇과 함께 발견된 옻칠조각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청동기 말기에 속하는 만큼 그보다 수세기 앞선 시대부터 옻칠을 사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국의 선사시대 옻칠공예 유물 중 1988년 경남 의창군 다호리에서 발견된 흑칠로 된 원형칠두(圓形漆豆)를 비롯한 20여점의 칠기유물(漆器遺物)들은 이미 한반도에서 한국의 옻칠공예문화가 독자적으로 형성되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한국의 옻칠공예문화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발전단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선사시대는 한반도의 옻칠발생과 도입기이자 옻칠공예문화의 형성기이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668-935)까지는 옻칠공예의 다양한 제작법과 기술이 도입되거나 창시된 시기로 한국 옻칠공예문화의 정착과 발전기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918-1392)는 새롭게 창안된 나전기법의 기술 등 한국 칠공기술(漆工技術)이 크게 발전한 시기이다. 조선시대(1392-1897)는 귀족취향에서 민간취향의 옻칠공예문화로 변화되는 전환기였다. 개화기(1860-1900)는 고려나 조선조와 같이 관(官)주도 생산체제에서 벗어나 자유생산체제로 돌입한 시기로 볼 수 있다.

한국 옻칠공예에서 주목할 점은 개화기 민영화체제 이전의 모든 옻칠공예품은 관(官)주도하에 제작되었고, 주칠기(朱漆器)는 어용기물(御用器物)외에 사용을 금지하였으며, 비로소 개화 이후부터 옻칠공예 장인들은 자유로이 칠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라시대(503-935)에는 칠전(漆典)이라는 관서를 두어 옻칠공예품 제작뿐만 아니라 칠전(漆田)을 확보·관리·감독했고, 고려시대는 중상서(中尙書)라는 관영 제작소를 설치하여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분업으로 나전 공예품를 제작했으며, 원(元)나라에서 주문한 대장경(大藏經)의 경책(經冊)을 수장(收藏)하는 나전경함(螺鈿經函)을 제작하기 위하여 전함조성도감(螺鈿造成都監)을 설치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옻칠은 관수품(官需品)이자 군수품(軍需品)이었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 감독하고, 칠장(漆匠)과 나전장(螺鈿匠)은 경공장(京工匠)의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 군기시(軍器寺)에 배치되어 왕실(王室)과 관수용품(官需用品)만을 제작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우리 선조들은 많은 옻칠공예 유물을 남겼는데, 그 유물 속에 숨겨져 있는 기예와 정신은 자랑할 만하다. 남겨진 옻칠공예 유물들을 살펴보면 나무로 만든 기물에 옻칠한 목태칠기(木胎漆器), 대나무로 만든 기물에 옻칠한 남태칠기(籃胎漆器), 금속으로 만든 기물에 옻칠한 금태칠기(金胎漆器), 가죽으로 만든 기물에 옻칠한 피태칠기(皮胎漆器), 종이로 만든 기물에 옻칠한 지태칠기(紙胎漆器), 옻칠로 삼베를 겹쳐 발라 태(胎)로 만든 위에 옻칠한 협저태칠기(夾紵胎漆器)가 있다. 그리고 이들 칠기 위에 색 옻칠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 채화칠기(彩畫漆器), 금속판으로 장식한 평탈칠기(平脫漆器), 자개로 문양을 만들어 장식한 나전칠기(螺鈿漆器) 등이 있다. 이중에서 특히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크게 발달한 나전칠기는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훌륭하고 자랑할 만한 한국의 옻칠공예는 개화이후 민영화 되면서 장인들이 기술전수를 받을 지도자를 잃어버렸고, 열악한 여건에서 옻칠공예품을 제작함에 따라 질이 떨어지고 조잡해졌다. 또한 개화의 조류를 타고 들어온 외래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 정통성마저 잃어가던 중 일제침략으로 단절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을 파악한 한국정부에서는 1962년부터 문화재보호법을 제정 공포하여 옻칠공예 무형유산을 포함한 전통공예 무형유산을 보존 전승하여 보호육성하고 있으며 옥천옻산업특구(沃川漆産業特區) 등 지자체에 옻칠특별지구를 지정해 옻나무단지조성, 옻칠원료생산, 옻칠공예품 생산 등 옻칠공예 기반조성에 힘쓰고 있다.

한편으로는 학교, 공방, 사회교육기관, 전수관 등 교육기관에서 옻칠공예 교육을 실행하여 옻칠공예 전문가, 전수자를 양성하고 있고, 이들이 한국옻칠조형회(韓國漆造形會) 등 그룹별로 옻칠공예단체를 결성해 학술연구, 전시 등 한국 옻칠공예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정부, 지자체, 옻칠공예 관련기관, 단체들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옻칠공예사업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면 앞으로 한국의 옻칠공예 무형유산은 다변화되고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미래 속에서도 그 숨결을 잃지 않고 발전되어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된다.

정해조, 배재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