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한국의 수자원 관리 : 마을공동체의 물 관리 전통과 관습

물에 대한 인식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보는 관점은 아주 보편적인 인식이며, 동서양에 전해오는 수많은 신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이 없으면 세상 모든 생명은 존재할 수 없으며, 무릇 생명이란 물을 근원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물을 신성시 하는 종교 심리가 생겼고, 산천(山川), 용신(龍神), 풍수(風水), 약수(藥水), 가정신앙을 비롯하여 부정 축귀와 관련한 ‘정수신앙(淨水信仰)’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물에 신성성을 부여한 것은 어찌하면 깨끗한 물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신성한 물이기에 함부로 다루면 안 되고 청결을 유지하도록 강요한 것이다. 그러나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이제는 물의 신성성이 사라진 대신 좋은 물에 대한 갈망이 지속되어 물을 상품화하는 경향이 더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일상생활 중 가장 중요한 우물과 보(저수지), 천(川)의 물 관리 전통과 관습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우물공동체와 깨끗한 식수 확보

우물은 단순히 식수를 공급하는 상징물이 아니라 마을 형성에 있어 구심점이 된다. 농촌이나 어촌은 우물을 중심으로 민가를 형성하고, 산촌마을에서는 천을 좌우로 하여 민가가 자리 잡는다. 샘이 자연상태에서 솟는 물이라면 우물은 인공적인 노력을 가한 취수 구조물이다. 따라서 우물은 대개 이웃끼리 함께 만들고 공동 식수로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한 우물을 먹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룬다. 즉, 한 솥 밥을 먹는 사람이 가족공동체를 이룬다면 한 우물은 우물공동체를 이루는 셈이다. 또한 우물을 사용하는 가구 수가 많아 물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식수 이외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일절 금했다. 그래서 한 겨울에도 우물에서는 빨래를 하지 못하고 멀리 개울에까지 나가야 했다. 이는 식수원의 부족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깨끗한 식수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도한 조처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수도를 보급하면서 우물물은 식수 보다 빨래용도로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우물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동이 들고, 여기에 동참한 사람만이 우물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 내에서 우물 사용범위는 우물을 축조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물공동체는 스스로 우물을 청소하고 공동으로 관리한다. 우물 청소는 대개 음력 정월대보름과 칠월 보름에 이루어지는데, 정월대보름에는 마을제사를 모시기 전에 샘을 치우고 난 후 깨끗한 물로 제물을 마련하며 제의를 지내고, 칠월 보름에는 장마철에 더러워진 우물을 청소하며 역시 제의를 거행한다.

보(洑)와 마을공동체

물을 확보하기 위한 인공물로 보(洑)와 저수지를 들 수 있다. 보나 저수지는 개울물, 냇물, 빗물을 모으기 위한 시설물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보는 지형이 낮은 곳에 저수지는 산이나 높은 지대 아래에 조성한다. 또한 저수지는 일 년 내내 물을 저장하지만 보는 모내기가 끝나고 장마철이 다가오면 둑을 무너뜨리고 물을 모두 흘려 보낸다.

과거에는 보와 저수지를 관리하기 위해 계(契)를 조직하였다. 그 조직을 ‘보계(洑契)’라고 불렀는데, 한국인이 알고 있는 수리계(水利契)는 후에 생긴 말이다. 보계를 조직한 이유는 농가가 개별적으로 저수지나 보를 축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한 마을 또는 몇 개 마을 농민들이 힘을 합하여 보를 공동으로 축조, 관리하고 물을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보계는 단순히 물 관리와 이용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 사이에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보계에는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계장과 같은 임원을 두며, 정기 또는 비정기 집회를 개최한다. 총회에서는 저수지 수문을 여는 시기와 분수방법(分水方法)을 토의하기도 한다.

민간에서는 보를 ‘물광’이라고 달리 부른다. 광이란 곡물을 비롯한 각종 물건을 넣어두는 공간으로 벼를 넣는 곳을 ‘볏광’이라고 불렀듯이 물을 가둬두었기에 ‘물광’이라고 부른 것이다. 물광은 모내기를 위해 물을 받아두었다가 벼가 익어가는 시기에 물을 버린다. 이것은 많은 곡식을 얻기 위해 벼의 성장 상태에 맞추어 배수를 조절하는 것인데, 논농사에서 물은 벼 성장을 신장시켜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벼가 익어갈 때는 논물을 빼는 것이 오히려 벼의 생육을 돕는다. 따라서 여름철 7월 장마 때 물광에서 물이 넘쳐 논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이전에 물광 둑을 무너뜨려 물을 모두 빼낸다. 한편, 보 보다 높은 곳에 있는 논은 용두레나 맞두레를 이용해서 물을 퍼 올렸다.

줄다리기에 사용했던 줄은 과거 보를 막거나 천변에 세워두었다. 용인지역에서는 줄다리기를 마치면 거대한 줄로 보를 막았다고 하며, 이는 이 지역 줄다리기 규모가 대단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줄다리기 줄을 천변에 늘어뜨려 비가 내리기를 바라고, 홍수가 난 경우 천변의 범람을 막아주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줄다리기 줄이 보나 천변에 등장하는 것은 줄다리기 줄을 수신(水神)인 용(龍)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즉, 물에 용을 두어 강우를 조절하기를 바란 것이다.

물꼬를 트고 막아 물을 조절하다

물꼬는 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좁은 통로이다.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짓던 시기에는 자기 논으로 물을 받기 위해 남의 논 물꼬를 몰래 트는 경우가 허다하여 물꼬를 두고 마을주민 사이에 다투기가 일쑤였다. 지금은 수리시설이 발전하면서 그런 모습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물꼬를 트고 막는 도구를 ‘살포’라고 한다. 살포는 두툼한 쇳조각으로 만든 머리 쪽 가운데에 긴 자루를 박은 삽으로 지팡이처럼 짚고 다닌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여러 왕조에서는 신하가 70세가 되어 사직을 해야 할 시기에 임금이 퇴직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 정사를 보도록 할 때 그 증표로 궤장(机杖)을 하사하였다. 궤(几)는 앉을 때 몸을 기대는 방석인 안석(案席)을 이르고, 장(杖)은 지팡이를 말하는데, 그때 지팡이가 바로 살포이다. 즉 살포 지팡이를 하사한 것은 치수와 농경에 힘쓰라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물의 힘을 이용하여 방아를 돌리다.

산간지역에서는 계곡에 흐르는 물의 힘을 이용한 통방아와 물레방아 같은 것으로 가을에 수확한 곡물을 찧는다. 물레방아는 인위적으로 수로를 만들어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방아를 돌리는 원리인데, 통방아는 방아가 하나라면 물레방아는 방아를 통상 두 개 건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그러다 보니 통방아는 어느 정도의 수량만으로도 방아를 움직일 수 있지만 물레방아는 돌아가는 굴대에 의해 디딜방아 두 개가 번갈아 가면서 곡물을 찧기에 수량이 풍부한 지역에서만 설치가 가능하다. 통방아의 기본적인 형태는 디딜방아와 같으나 그 동력을 사람 대신 물을 이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물레방아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통방아는 방아채를 위로 올려두면 수로의 물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천(川)으로 흐르지만, 물레방아는 물레 쪽으로 흐르는 수로를 막고 옆의 수로를 터서 천으로 떨어지게 한다.

통방아나 물레방아를 설치한 곳을 방앗간이라고 하며, 처음 방아를 걸 때는 고사를 지낸다. 돼지머리·대구포·팥 시루떡·삼색과일·막걸리를 차려놓고 ‘한 해 열 두 달 걱정 없고 사고 없이 해 달라’고 비손을 할 정도로 이를 중시하였다. 특히 물레방앗간에 얽힌 재미있는 풍속도 있다. 한국 영화를 보면 물레방앗간을 배경으로 하는 정사 장면이 많이 보인다. 사람들이 물레방앗간 하면 흔히 그런 장면을 연상하고, 아이를 못 낳는 부부가 방앗간에서 성행위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있었기 때문이다. 방아는 대부분 마을공동체 소유였다. 수로를 이용해 설치하다 보니 일손이 많이 필요하고, 관리나 보수도 마을주민이 함께 한다. 그러다 보니 방아를 통해 마을공동체가 강화되고 이웃사촌이 되어 집안의 대소사에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