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탈레주와 쿠마리 구띠에 속하는 뉴어인 불교 성직자들이 하누만 도카 두르바르 광장에 있는 쿠마리하우스 앞에서 정화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모습 © 모나리자 마하르잔

토착적 문화유산 보호 관습: 카트만두 계곡의 구티 체계

카트만두 계곡의 원주민 뉴어(Newar) 인들은 구티(Guthi)라고 하는 연대조직을 통해 유·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매우 독특하고 지속가능한 유산 보호 방법을 가지고 있다.

5세기경 고대에서 시작된 구티 관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네팔 사회와 문화유산을 지속적이며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구티는 사원을 관리하는 간단한 일상 의식에서부터 마차 행렬과 전통 가면무용 같은 큰 행사를 조직하고 음악을 가르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카스트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 속에 젊은 세대를 통합함으로써 사회적 기능 또한 뒷받침하고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 구티는 지역사회 체계뿐만 아니라 카스트 체계도 기반을 두고 있다. 수십 년 전만해도 대다수 네팔 사람들은 카스트에 따라 정해진 직업만을 가질 수 있었다. 대장장이, 농부, 성직자, 목수 같은 직업에 따라 성이 붙여졌기 때문에 그들의 성을 보면 직업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상황이 변하였다. 사람들은 각자 가진 성에 상관없이 누구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카트만두 계곡의 고대도시 경계 외곽에서 살고 있지만 구티는 아직도 고대의 가족적 전통에 기반을 둔다. 현재 지역성과 카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 환경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대체로 구티 체계는 각각의 계급에 속한 채 그에 따른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다.

일부 구티는 조직에 속하려면 각자 별도의 직업을 가져야 했다. 구티 중에 사나 구티(sana guthi)는 주로 장례식을 수행했으며, 트와 구티(twa guthi)는 어린 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젊은이들이 공동체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구티야르(guthiyar, 회원 구티)는 사원을 관리하고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했지만 이들 구티에는 성직자뿐만 아니라 농부, 청소부 혹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도 회원으로 속해 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구티의 특성 때문에 점점 구티를 떠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근대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한다.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구티에 속해 있음에도 갈수록 많은 구티들이 회원을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특성을 완화하고 있다.

구티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사원 관리를 위한 토지기부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소득원으로서 사람들을 위해 수행하는 의식이다. 고대에 사람들이나 왕실에서는 사원, 돌 저수지, 혹은 숙박시설을 지을 때 수리, 복원 그리고 의식을 위해 토지를 기부했다. 기부 목적은 사원에 빈랑나무 열매를 공양하는 것과 같은 작은 의식에서부터 대규모 축제 기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토지 기부는 신앙심과 관련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양을 하면 복을 받고, 앞으로 7세대에 걸쳐 가족이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한편 토지 기부는 정치적 혼란기에 토지 몰수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구티의 땅을 철회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대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농업을 주 산업으로 하는 카트만두 계곡의 토지는 매우 비옥했기 때문에 수많은 축제와 사원이나 기념물 건립에 토지를 기부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다. 성직자, 청소부, 공예가들은 봉사에 대한 대가로 농산물이나 토지를 받았다. 대부분의 축제와 의식은 농사철에 따라 행해지는데 예를 들어 우기에는 밭에 나가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축제나 기념행사가 없다.

구티 체계는 구티 회원들의 역할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단 없이 여러 세대 동안 지속되었다. 구티 회원들은 구티의 일원이 되는 것 외에는 얻는 것이 없었다. 각 구티는 사원을 관리하고 축제를 조직해야 하는 책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 구티의 영향력은 변화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구티는 사라지기도 했다. 구티의 운명은 1769년 계곡의 말라 왕국(Malla Kingdom)이 샤(Shah)왕에게 넘어가고 권력 이동이 일어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18세기 이후, 새로운 통치자들은 구티가 보유한 토지를 전쟁 자금으로 사용했다. 이후 유럽 건축과 정원에 심취했던 라나(Ranas) 통치자들은 왕궁을 짓는 데 방대한 토지를 썼다. 20세기 중후반에는 네팔정부가 관공서, 병원 그리고 공항을 짓는 데 구티 토지를 사용하였다.

1964년 정부는 모든 구티 토지를 국유화하고 대신에 구티 조합을 만들었다. 이 조합에서는 의식, 축제 그리고 다른 행사를 개최하기 위한 기금모금을 시작했다. 조합은 관료적이며 하향식 관리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구티의 풀뿌리 관리와는 매우 다른 형태였다. 정부가 주도한 새로운 접근방식은 카트만두 계곡의 유산 보호 방식을 무너뜨렸다. 구티 법인 사람들은 전통적인 구티의 특성과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수입 대부분을 직원 월급으로 지급하였고 동시에 많은 토지가 횡령으로 손실되었다. 전통적인 구티는 엄청난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십 년 전에 받았던 돈을 거의 그대로 받고 있다. 결국 많은 구티가 활동을 중단했으며, 이는 가면무용과 의식의 연행 단절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 또한 남아 있다. 카트만두 계곡에서 행하는 대다수 전통축제는 아직도 전통 구티들이 조직하고 있으며 사원들 역시 그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수백 년 된 구티의 오랜 전통이 네팔의 공식적인 유산 보호 활동 안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동체가 참여하는 전통은 이미 구티 체계에서 시행해 왔던 것이다. 공동체는 유산 보호의 관습 보존에도 참여하고 있다. 절실한 것은 기존의 관습을 다시 정비하는 것이지 완전히 새로운 유산 보호 전략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네팔의 문화유산 보호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공동체 기반의 유산 보존과 공식적인 유산 보존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서로 융합하지 못하는 점을 알 수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근대 네팔사회에서 구티 체계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