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조선왕조의 궁중연회와 잔치 음식

조선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왕도정치의 일환으로 조선 왕실에서는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술과 음식, 풍악이 어우러진 연회를 열어 백성들에게 알리고자 하였다.

왕 실에서 연회를 열 때는 백성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장엄하고 화려하게 권위를 드러내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왕실에서 잔치를 할 만큼 경사스러운 날로는 왕실 가족들의 사순(40세), 오순(50세), 망오(41세), 망육(51세), 회갑(60세) 등 생일과 왕이 존호를 받을 때, 나라에 공헌한 원로들의 모임인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할 때, 왕세자 책봉, 가례, 외국 사신이 왔을 때 등이 있다.

궁중의 연회는 진연(進宴) 또는 진찬(進饌)이라 일컫는데, 『진찬의궤』, 『진연의궤』라는 문서들에는 진연과 진찬이 어떤 식으로 준비되고 진행되었는지가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행사의 논의과정, 진행상황, 참여자 명단, 업무분장, 사용된 물건과 기자재의 목록 및 가격, 인건비, 차려진 음식 목록 등이 문자뿐만 아니라 생생한 그림까지 곁들여 기록된 의궤는 대단히 귀중한 자료이다.

의궤에 나타난 일반적인 궁중연회의 절차를 살펴보자. 우선 연회를 몇 개월 앞두고 필요한 물건과 자재를 구매하고 연회 당일의 의식이 진행되는 순서, 무용과 노래, 음식을 정하여 준비하는 임시관청인 도감(都監)이 설치된다. 미리 정해진 상차림 계획은 찬안(饌案)이라는 문서로 정리되어 현장의 인력에게 전달된다. 의궤 안에 들어 있는 찬안을 보면 식기나 상 이름, 음식을 장식하는 꽃인 상화(床花)까지 정리되어 있다. 다만 안타깝게도 각 음식의 조리법은 나와 있지 않아 재료와 그 분량을 보고 조리법을 추측해야만 한다.

문화재청은 이러한 조선시대의 왕실문화와 음식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국가지정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올해 개최되는 궁중문화축전에서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기 직전인 1892년에 경복궁 근정전에서 행해진 진찬연이 재현될 예정이다. 이 잔치는 고종이 왕위에 오른 지 3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열린 잔치이며 조선왕실의 이름으로 행해진 마지막 잔치이기도 하다. 전통에 따라 고종은 자기를 위한 잔치를 여는 것을 몇 번 거절하다가 전년도에 세자의 간곡한 청을 못이기는 척 허락했다.

첫 날 잔치는 외진찬(外進饌)이라 하여, 세자와 문무백관, 왕실의 친척들이 참여하는 남성 위주의 잔치가 아침 6시부터 근정전에서 진행되었다. 둘째 날 낮에는 여인들의 잔치인 내진찬(內進饌)이 강녕전에서 열렸다. 남자인 문무백관은 참여할 수 없었고, 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왕실 친척 집안의 부인들이 참석했다. 같은 날 저녁에는 왕세자빈과 관료들이 참석하는 야진찬(夜進饌)이 열렸다. 셋째 날에도 나머지 인원들이 참석하는 잔치가 낮밤으로 열렸다.

이 행사에 소요된 비용이 981,858냥이며 그중 797,583냥이 음식을 장만하는 데 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잔치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 히 고종에게 바쳐진 상은 그 규모나 가짓수 면에서 단연 으뜸이다. 대탁찬안, 찬안, 별행과, 진어미수, 염수, 탕, 대선, 소선, 만두, 차의 순서로 음식이 올랐는데 이 하나하나가 다양한 음식을 차리고 더러는 장식적으로 높게 쌓아 올린 독립된 상차림이었다. 떡이나 과자, 고기와 술안주를 높게 쌓아 올린 상은 ‘고임상’ 또는 ‘고배상’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이와 같은 상차림 형식이 반가에 퍼지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와, 요즘에도 부모의 회갑, 칠순, 팔순 잔치 때에는 자손들이 가문의 번창함과 효심을 보이기 위해 음식을 쌓아 올린 고임상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19세기말 궁궐에서 열린 잔치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는 이처럼 그 잔치와 그를 둘러싼 궁궐의 문화가 우리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만은 않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이번에 궁궐문화축전에서 재현되는 근정전 진찬연은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에 대한 흥미와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