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1669년경 궁중무용수들이 묘사된 이란의 이스파한 하쉬트-베헤쉬트 궁정의 프레스코화

이란의 궁중무용 : 번영과 변화 그리고 유배

지난 수천 년 동안 무용은 페르시아 문화와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였다.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항아리에 그려진 춤추는 모습은 이 예술분야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이란 궁중무용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제의(祭儀)무용은 미트라 숭배시기(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의무용은 초기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Achaemenids, 기원전 약 550~330), 파르티아 왕조(Parthians, 기원전 247~기원후 224), 그리고 사산 왕조(Sassanids, 224~651)시대에 궁정에서 거행되는 의례로 수용되었다. 음악과 율동적인 인간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은 궁정의 사회적, 의례적 연관성 속에서 여흥의 수단으로서뿐만 아니라 높은 미적, 문화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궁중의 관습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샤한샤(<em>shahanshah</em>, 왕 중의 왕)와 그의 근신들까지도 춤추는 데에 기꺼이 참여하곤 했던 것이다.

헬레니즘시대(기원전 323~31)의 그리스 연극과 무용은 이란, 특히 파르티아 왕조의 취향과 전통에 잘 맞았다. 그리고 이들의 무용전통, 그 중에서도 궁중무용은 다시 코카서스에서 중앙아시아와 인디아를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광범위한 지역 내 국가들의 무용 동작과 무용 용어에 영향을 미쳤다.

‘페르시아 무용’이라는 용어는 당시 몇몇 그리스 역사가들이 불춤, 와인춤, 검무(劍舞), 마상무(馬上舞) 등 페르시아 왕족들이 참가했던 의식(儀式)무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였다. 페르시아의 군무는 그리스를 거쳐 알렉산더대왕의 페르시아 침략 이후 여러 코카서스 국가에서 널리 공연되었는데, 오늘날의 레즈기안(Lezgian)인과 코사크(Cossack)인의 춤으로 계승되었다.

아랍이 이란을 정복(633)하면서 궁중무용의 전통은 중단되었다. 수세기 동안 정치적 불안이나 내전, 외세의 점령을 경험하면서, 시각예술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하기 시작한 페르시안들 사이에서 무용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또한 무용이 신을 연결해주는 매개자로서 ‘수피(Sufi)’라고 불리는 새로운 정신적 개혁 사상가들의 관례로 행해짐에 따라 무용은 명예와 명성 또한 얻게 되었다. 이후 무용은 이란의 문화영역에서 꾸준히 발전하였으며, 심지어 이란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궁중의 전통적 오락거리로서의 무용은 사파비 왕조(Safavids, 1501~1722) 시대에 다시 활발해졌다. 사파비 왕조는 새로운 정치의제와 더불어 페르시아 궁정에 무용을 다시 들이고 기예의 아름다움, 민족 정체성, 번영을 반영한 새로운 무용 용어를 마련하는 등 문화발전의 새 시대를 열었다. 궁중무용은 다음 왕조인 카자르 왕조(Qajars, 1794~1925) 시기에도 궁중전통의 일부로 존속하였다. 비록 강경한 성직자들의 비난이 있었지만 궁중무용은 끊임없이 발전하였으며, 프레스코, 세밀화(細密畵), 유화(油畵)와 같은 페르시아 시각예술품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제4대 카자르 왕이었던 나세레딘 샤(Nassereddin Shah)는 하렘 1이슬람 국가에서 부인들이 거처하는 방. 가까운 친척 이외의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이다. 편집자 주에서 춤 공연을 열었는데, 여기에 84명의 아내와 수많은 그의 딸들이 참가하였다. 이 당시의 시아파(Shiite) 법은 모든 종류의 춤을 금지하였지만 왕조의 최고 권력자가 이 종교법을 보기 좋게 위반했던 것이다.

카자르 왕조 이후 팔레비 왕조(Pahlavi, 1925~1979)의 제1대 왕인 레자 샤(Reza Shah)는 궁중무용을 금지하였다. 그는 정치, 사회, 문화적 개혁을 통해 왕의 하렘 행렬 또는 ‘음란한 오락’과 같은 이전 페르시아 왕조들의 수많은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였다.

레자 샤의 등장으로 이란 궁중무용은 두 가지의 상반된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하나는 예술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고 여긴 것인데, 성적인 것과 경조부박(輕佻浮薄)한 것을 표현하며 카바레, 사교모임, 오락을 위해 공연되는 것이었다. 보통 독무로 연행되는 이러한 종류의 춤은 왕족 앞에서는 공연할 수 없었다.

다른 나머지 하나의 방향은 예술로 발전한 것으로, 오늘날 페르시아 전통/고전 무용을 가리키며 항상 전통적인 페르시아 음악인 다스트가(dastgah)와 함께 공연된다. 무용 동작은 유연성, 우아함 그리고 주로 상체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얼굴 표정도 중요한 요소이다. 궁중무용은 전혀 성적이지 않으면서 여성적이고, 당당하며, 흥겹고, 동적이다. 움직임에서 자신감을 드러내 보이며 문학과 역사적 주제를 자주 활용한다.

1979년 이슬람 혁명과 신정체제(神政體制)가 성립되면서 전통 궁중무용은 적어도 공공무대에서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궁중무용이 주로 여성들에 의해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1979년 이후 이라크와의 8년 전쟁 등 정치적 혼란과 뒤이어 팔레비 정권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자 한 문화혁명으로 인해, 무용예술은 약 20년 동안 이란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혁명시기에 30대와 40대를 보낸 선배 무용수들이 젊은 무용수들에게 이란 전통무용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지하운동을 시작했다. 수백만의 이란인들이 1979년 혁명 이후 해외로 이주하면서 전 세계에 이주민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이전의 전통무용가들과 몇몇 페르시아 무용을 전공한 외국 무용수들 덕분에 이란의 전통 무용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과거 10여 년 동안 이란의 신세대 무용수들이 이란 이주민공동체에서 성장하였으며, 그들은 새로운 젊은 세대를 위해 이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Notes   [ + ]

1. 이슬람 국가에서 부인들이 거처하는 방. 가까운 친척 이외의 일반 남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장소이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