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기도하는 남자 © 방글라나탁 닷 컴

보로 카차리: 믿음, 공포, 욕망, 성령에 관한 이야기

믿음의 땅 인도에는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 욕망, 영혼, 의례들이 지배하는 수많은 축제와 장소들이 있다.

인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33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인도전역에서 수많은 이름과 형태의 3억 3천만 신들을 일 년 내내 숭배한다. 인도의 거의 모든 마을이 자신들만의 마을 수호신을 가지고 있으며, 신도들은 수호신의 위대함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고 그들의 가호가 내려지기를 기원한다.

보로 카차리(Boro Kachari)는 ‘대법정’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콜카타(Kolkata)에서 20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서벵갈(West Bengal) 지역의 마을이다. 원래는 붓 카차리(Bhoot Kachari)라고 불렸던 곳이다. 붓 카차리는 영혼의 법정이라는 뜻으로 크리쉬나(Krishna), 브라마(Brahma)와 더불어 힌두교 삼주신(三主神) 중 하나이자 신과 영혼의 주인인 시바(Shiva)가 주재하는 법정을 말한다. 여기서 수많은 이름을 가진 시바신은 ‘영혼의 재판관’이라는 뜻을 가진 붓나트(Bhotnath)로 불린다.

이 지역에는 아쉬밧타(Ashvattha)라고 불리는 신성한 무화과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 아래에 있는 보로 카차리 사원은 실천적 힌두교도들의 보수적 성향을 고려할 때 매우 예외적인 장소이다.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않고 신도(이슬람교도와 같은 비힌두교도들과 힌두교 카스트의 모든 계층이 다 해당됨)들이 붓나트의 사원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보로 카차리는 서벵갈 지역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지만 붓나트 신에게는 다른 문제들, 예를 들어 재산분쟁과 관련한 것에서부터 질병으로 인한 직장문제, 잘못된 애정문제, 부부 간 불화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 빌 수 있다. 신자들은 소원쪽지를 붉은 실로 사원 난간에 묶어놓는다. 그렇게 글로 소원을 써서 신의 법정에 두면 신이 그 소원을 지나치지 못할 것이며 이 소원쪽지를 달아 놓음으로써 자신들의 간청을 신이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이를 원했던 사람들 중에 아들을 갖게 된 사람은 감사의 표시로 크리쉬나 신의 상징인 고팔(Gopal) 상을 보답으로 바친다. 딸을 얻은 사람은 갓 수확한 작물과 채소를 바친다.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들은 장식이 많은 의상을 입고 이마와 뺨을 백단향 풀로 장식한다. 봉헌자들은 사원 뜰에 있는 연못에 들어가기 전에 목욕재계를 한다.

어디에서나 피우는 향, 양초 그리고 시바 링감(Shiva Lingam, 시바 신을 나타내는 남근형상의 돌)에 부은 우유의 향기들이 서로 어우러져 그 곳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이면 보로 카차리로 향하는 끝없는 행렬을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앞장 선 가운데 현대적인 차림의 악단들이 힌두와 벵갈영화에 나오는 대중가요를 시끄럽게 불러댄다. 이러한 불협화음은 4월 중순 닐푸자(Neel Puja) 기간 동안 열리는 주요 마을 연례 축제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닐푸자는 2주간의 긴 카니발 후에 시작하는데 이때 경찰들은 소란스러운 축제 행렬을 못 본 척 눈감아 준다.

보로 카차리의 역사는 구전서사에 토대를 두고 있다. 1740년대 초 벵갈의 마지막 이슬람 통치기간(나왑 알리바르디 칸 치세)에 서인도왕국에서 온 마라타(Maratha)의 약탈자들은 이 지역의 벵갈인 거주지를 습격하여 집들을 약탈하고 때로는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은 샤우샨(Shawshan)이라고 불리는 힌두교들의 야외 화장터였던 인근 정글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열성적인 힌두교도들인 마라타인은 신의 분노를 사지는 않을까 두려워하여 화장터로 사용되는 정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나이 많은 힌두교 승려가 갑자기 나타나 화장터 근처에 거처하게 되었다. 마을사람들이 그에게 다가가 자신들의 고충에 대한 위로와 질병치료를 요청하자 그 승려는 큰 은혜를 베풀었다. 그 후 수년이 지나는 동안 마라타인의 습격이 멈추었고 마을은 다시 번창하게 되었으며 질병들은 모두 치유되었다.

승려가 죽고 난 후, 추종자들이 그를 생전에 살았던 곳에 묻어주었다. 며칠 되지 않아 승려의 무덤 위에서 아쉬밧타의 싹이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가 시바신의 현현(顯現)이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또한 그가 신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무로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978년 큰 홍수가 났을 때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아쉬밧타가 손상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사원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신도들은 여기에 놀라지 않고 손상된 아쉬밧타 옆에 다른 아쉬밧타를 심었는데, 곧이어 새로운 나무가 옛 나무보다 더 크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