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Asia and the Pacific

필리핀 민다나오대학 설립 50주년기념 다랑겐 공연 © 레나토 라스트롤로

다랑겐, 마라나오족의 서사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의 라나오델서에 거주하는 마라나오족은 생활양식에서 드러나듯이 활력이 넘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마라나오족의 문화는 전통복식인 말롱 만큼 다채롭고, 건축물을 장식하는 오키르 문양만큼이나 정교하다. 필리핀 마라나오족의 고대민속서사시인 다랑겐은 마라나오 문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 중 하나이며, 다랑겐 연행을 듣지 않고서는 진정한 마라나오 문화를 느낄 수 없다.

마라나오 고대민속서사시인 다랑겐의 역사는 필리핀의 이슬람화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를 가진 마라나오어 ‘다랑’에서 기원한 다랑겐은 노래나 기도의 형태를 띠며, 다른 서사시와는 달리 말하기보다 노래의 형식을 가졌다. 다랑겐은 마라나오 고어 어휘로 지어졌는데 마라나오 고어는 음운론적, 의미론적 유사성 때문에 산스크리트어에 기원을 두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랑겐에는 단일한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랑겐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인 벰브란 지역의 조상들로부터 전승된 것이라고 믿는다. 마미투아 사베르 박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벰브란 왕국은 작은 마을이나 소도시가 아니라 진정으로 위대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이 왕국이 자신들의 조상의 고향이라고 믿고 있는데, 현재 이곳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왕국의 주민과 동물, 보물들이 그 때 모두 함께 사라졌다.”

그의 말은 다분히 환상적으로 들린다. 이 ‘잃어버린 도시(the Lost City)’는 서사시를 통해 동쪽 지역의 말레이, 힌두 그리고 아랍의 유사한 이야기들에 나오는 휘황찬란한 도시들과 유사한 동화의 나라처럼 말이다.

다른 서사시와 마찬가지로 다랑겐은 여러 개의 주제들로 이어지는 산문시이다. 이 산문시는 총 8권까지 출간됐고, 약강구조의 4보격 혹은 각운이 1음절 적은 강약구조를 지닌 72,000행으로 구성된 17개의 연작시이다. 각 연작시에는 한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연작시의 이야기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기법상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연행자들은 내용을 쉽게 암기할 수 있으며 힘들이지 않고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다랑겐의 내용은 가수, 연설가, 공연가 등 마라나오의 예술 분야 종사자 다수가 흔히 활용하는 소재가 되었다. 또한 카윙(kawing, 결혼식)이나 술탄 즉위식과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불리거나 심지어 어린아이를 재울 때 자장가로도 활용된다.

서사시는 힘이 센 아요난들과 위대한 왕국, 신비로운 토농(정령이라는 뜻)에 관한 환상적인 모험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왕족인 남녀영웅은 모험만큼이나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늘을 날 수 있으며 여러 토농들을 불러내어 태양과 바다를 지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전쟁을 할 수 있는 강인함도 갖추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웅들은 국민의 존경을 받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결혼도 한다. 전형성을 갖춘 등장인물들은 서사시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도덕적 교훈과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서사시의 내용은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마라나오의 가치와 관습법들의 문학적 예증이다. 이야기들은 상징, 은유, 역설, 풍자를 통해 가족, 사랑, 전쟁, 죽음 등의 주제를 반복한다. 서사시는 마라나오 사회의 여러 이념들을 지킨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가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연행자들과 더불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첫 번째 요인으로 서사문학이 현재 마라나오의 이슬람 신앙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최근 마라위의 마라나오족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마라나오의 무형문화유산도 분쟁 속에서 소멸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도시화된 필리핀의 생활방식에서 이러한 서사문학이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구전문학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물론 다랑겐이 마라나오와 더 이상 아무런 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사문학의 보호에 어려움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방법론과 문화전문가들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고대서사는 기록을 통해 살아남게 되었다. 지금까지 8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각 권마다 3~4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국립 민다나오대학 연구센터의 민속분과는 마라나오의 어르신들과 마라나오의 여러 마을에서 수집한 키림(kirim, 손으로 쓴 만다나오 노래책)에 나오는 모든 서사이야기를 번역, 연구하는 방대한 작업에 착수하였다.

다랑겐은 2002년 국립박물관 지정 필리핀 국가문화재 및 라나오델서의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었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3년 무형문화유산협약이 채택된 이후, 2008년 인류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